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

어떤 인턴

by 윤슬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바람에 쓸려온 것 같은 구름이 나지막하게 깔려 있는 오후,

굳이 약속보다 포근한 고립이 좋았던 그날은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춰 놓은 영화가 있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70세 인턴이 젊은 CEO와 함께 세대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이야기’ <인턴>이다.

은퇴 후 다시 사회로 돌아온 노년의 인턴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진심과 배려로 젊은 세대와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나에게 따뜻한 온도로 다가웠다.

영화 <인턴> 속 줄스(앤 해서웨이) 그리고 벤(로버트 드니로)은 세대도 성격도 속도도 다른 두 사람이다.

그런 것들이 달라도 ‘마음이 닿으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흔한 메시지가 오래도록 내 마음을 데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화면 속 그의 느린 리듬이, 요즘의 내 마음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벤은 줄스의 옆에서 조용히 일상을 지켜본다.

그가 건넨 건 특별한 조언이 아니라, 언제나 자리를 지켜주는 ‘온기와 묵묵함‘ 같은 ’ 존재감’이었다.

지쳐있는 그녀 옆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얘기를 들어줬다.

그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누군가의 곁을 그렇게 지켜온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를 떠올리게 됐다.

딸의 세상이 점점 커지고, 내가 딸에게 스며드는 시간이 작아질수록 나는 여백이 많아졌다.

딸이 독립한 후 내 일상은 어쩌면 나에겐 새로운 세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살고 있는 어느 부분과 닮아서일까,

내 이름을 덮은 나의 역할에서 살짝 비켜 나와, 남은 여백을 새롭게 채워가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서툴러도 괜찮고, 서둘지 않아도 괜찮다 ‘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배우는 중이다.


시작이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의 무게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인 거 같다.

젊은 세상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았던 영화 속 그는,

빨라야 한다는 강박 대신, 한 호흡씩 깊게 살아가는 법을 보여줬다.

나의 익숙한 하루 속에서도 분명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놓치고 살았다.

대낮에 감성에 젖은 내가 되기도 하고,

같은 온도의 바람을 다르게 해석하는 감성을 가질 줄 알고,

세상을 탐색하는 버릇과 시선이 닿는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글의 표현력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좋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 후, 요즘 내가 즐기면서 기록하는 것들이다.

일상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감각을 느끼며 산다는 것, 알고 보니 엄청 중요한 내적 풍요로움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그저 한 편의 영화를 본 관객이지만, 언젠가 내 삶에도 새로운 챕터를 열 동기부여가 되었다.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서툴지만 이제는 그 서툼마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나이가 든다는 건, 경험이 쌓인다는 말보다 조용히 ‘여백‘을 넓혀가는 일인 것 같다.

그 여백을 채워가는 길에서 비로소 본질적인 나 다움이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는 내 삶이 기대된다.


“경험은 절대 늙지 않아요, 경험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죠”

<인턴> 속 내가 뽑은 명대사 중 하나이다.

나이와 세대가 달라도 경험과 지혜는 여전히 강력한 자산이란 것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배움과 기여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경험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살면서 쌓아온 모든 경험이 훗날,

딸의 어떤 시작 앞에 견본처럼 열어볼 수 있도록,

인생의 인턴이자 영원한 친구로, 여백을 채우면서 걸어가는 중이다.

조금 느린 리듬이라도 여전히 내 속도로, 내 온도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