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

엄마, 우리 집 올래?

by 윤슬

빗물자국이 유리창에 선을 그으며 느릿하게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나는, 소파에 걸터앉아 눈이 편한 곳에 시선을 뒀다.

한참을 멍 때릴 수 있는 이런 여유가 이젠 좋아지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우드 보드에 갖가지 디저트들을 플레이팅 해서 가져왔다.

‘아침이니까 이 정도 양은 괜찮아’

그래도 고민 끝에 가까스로 다잡은 양심이었다.


“엄마, 추워지기 전에 우리 집에 놀러 와”

딸이 ‘학교 가는 중‘이라는 말과 함께 보낸 톡 내용이었다.

이 짧은 문장에 나는 순간적으로 벙쪄서 헛웃음이 났다.

이제 ‘우리 집’이라 부르는 공간이, 내 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에 다양한 감정이 요동쳤다.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하느라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다닐 시간도 부족할 텐데…“

‘우리 집‘에 초점을 두지 않은 척 담담하게 답을 보냈다.

“테라스 예쁜 카페 보니까 엄마 생각나서.., 엄마가 저번에 연남동 가보고 싶댔잖아 “

핫플로 소개된 곳들을 보며 나중에 같이 가보자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 힙한 곳에 엄마랑 가도 될까? “

예쁘게 플레이팅 된 디저트들을 의미 없이 들었다 놨다 하며 답을 보냈다.

“뭐 어때서! “

“그리고 어차피 엄마 동안이라서 말 안 하면 아줌마로 안 봐, 걱정 안 해도 돼! “

“헤헤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딸은 내가 미리 쟁여둔 사랑을 야금야금 찾아먹으며 자취라이프에 한껏 빠져있는 중이다.

우리 부부는 딸이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으면 하고 오피스텔을 신경 써서 꾸며주었다.

냄새가 차단되는 환풍구와 배수구, 손이 쉽게 가도록 공간별 선반과 정리함을 둬서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꾸며줬다.

통창뷰를 해치지 않을 하늘하늘한 커튼도 달아주고 카펫도 깔아줬다.

혼자 지내는 내내 포근했으면 하는 마음에 초점을 뒀다.

그렇게 스민 엄마아빠의 흔적으로 당차게 서울살이를 해나가고 있었다.



딸의 첫 번째 초대였다.

그날은, 적당한 가을바람이 외출을 재촉하던 날씨였다.

‘초가을 바이브의 감성‘은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유튭에서 어떤 아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예쁜 소리가 난다 “라고 순수하게 표현했던, 딱 그런 기분이었다.

지하철을 타는 내내 다양한 상상을 머릿속으로 채우는 재미도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가을무드 낭낭한 카페테라스에 앉아 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뭔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딸의 바뀐듯한 분위기도 ‘다른 세상‘에 한몫하는 것 같았다.

편집샵에서 구입한 소품도, 팝업스토어 구경도 나에겐 귀한 경험이었다.

기록용이든 기억용이든 꽤 많은 사진을 남기며 다음 포토 스폿을 눈으로 찾고 있었다.

“엄마, 뒤에 사람 있어”

‘있으면 어때, 다들 찍고 있는데 ‘ 싶었지만 이내 수긍해 버리고 자리를 옮겼다.

“거긴 사진 찍기 좀 그래”

누가 봐도 포토존인데 아줌마가 찍는 곳은 따로 있나 싶었다.

“그 포즈 그만하고 팔 내려”

난색 하며 딸은, 손을 뻗어 내 팔을 끌어내렸다.

팔을 얼굴 앞으로 뻗어 브이를 하는 동작은 내 얼굴이 조금 가려져 나오게 찍는 방법으로 나름 생각해 온 것이었다.

무리한 사진 컨셉이란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 딸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될 때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멈췄다.

딸과의 알 수 없는 기싸움이 몹시 거북한 느낌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지 말았어야 했나…’

딸의 표정을 뚫어져라 응시해 봐야 어떠한 것도 해독할 수 없었다.


‘실망은 원래 일상적인 것인가!‘


딸이 미리 찾아둔 식당은 적당한 알코올을 곁들일 수 있는 연남의 분위기 있는 양식집이었다.

창가 자리를 두고도 구석진 창고감성 자리를 고집하는 딸이 못마땅했다.

그런 표정을 읽은 건지, 내 사투리에서 전해진 타지사람에 대한 배려인 건지, 직원은

“이 자리가 유독 어둡긴 해서.., 아래층에 야외자리 손님이 방금 나갔는데 옮겨드릴까요? “라며 메뉴판을 온전히 내려놓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사뭇 다른 온도를 느낀 건, 바라던 테라스자리에 앉게 된 내 기분을 만끽하게 두지 않는 딸의 퉁퉁 불어 터진 말투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도 알 수도 없는 딸의 뾰로통한 표정에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말 따위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지 않았다.

꽤 오랜 기간 서울에 살은 듯, 익숙해진 척하는 딸이 괜히 미웠다.

곁눈질하며 딸의 눈치를 보자니 날카로운 신경이 머릿속을 해집었다.

사춘기 이후 오랜만에 눈을 내리깔고 앉아있는 딸을 보니 못 견디게 짜증이 났다.

“표정관리 좀 해 “

“같이 앉아있는 엄마생각은 안 하는 거야? “

간신히 참고 있던 숨을 토해버렸다.

기다려야 하는 때를 알면서 기다리지 못했을 때 전달되는 마음은 극도로 위험했다.

딸은,

그런 나의 눈을 비껴 내 뒤에 등진 불빛을 막는 척 두 손을 포개어 눈을 반쯤 가리고 말했다.

“엄마, 너무 아줌마 같아!”

나는 말문이 막혀 정신이 혼미해졌다.

“동안인 얼굴을 하고 행동은…,”

딸은 혼잣말처럼 흐릿하게 중얼거렸다.

나의 어떤 행동이 딸은 부끄러웠던 걸까.

내 나이대로 보지 않는 주변인들 덕에 실제로 나를 언니인척 하려 했던 걸까.

사투리가 튀어 보였을까.

개성 있는 옷차림을 싫어하지 않는 내 오버핏 재킷이 거슬린 걸까.

내 무엇이….?

딸이 말한 ‘아줌마‘는 내가 흔히 아는 그 뜻이 아닐 텐데…

생각에 집중하느라 음식이 나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말이 이어지지도, 시선을 주고받지도 않은 채 앞에 놓인 음식만 먹었다.

“마지막 음식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직원이 마침 침묵을 깨 주었다.

“식기 전에 얼른 먹자”

어두운 불빛 때문에 딸의 얼굴윤곽이 그늘져 낯선 사람을 보는 듯했다.


‘때론 상상하던 일들이 전혀 다르게 일어나기도 한다 ‘

딸이 한 말에 바로 반박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딸의 복잡한 감정을 알 것도 같아서, 굳이 그것을 내 귀로 듣고 싶지 않아서…!


”이제 나갈까? “

어색한 침묵을 깨고 딸이 말했다.

오른손에 든 포크로 부스러진 감자 살들을 모으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고 딸을 바라봤다.

‘어색해서 어떻게 걸어가지 ‘

‘생산적 대화를 좀 더 하고 분위기를 바꿔서 나가야 할거 같은데…’

‘무슨 말을 하지?’

생각이 많았지만 막상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몰라, 그러던지 ‘ 가 아니란 뜻임을 알아줬음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딸은 주섬주섬 가방끈을 메며 의자를 뒤로 밀려고 엉덩이를 움직였다.

늦을세라, 나도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석양의 온도와 그윽함에 마음을 빼앗길 기회도 주지 않고 혼자 가로질러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빠르게 따라 걸었다.



마음의 혼돈 때문인지 집에 도착하자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우린 각자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쉬는 핑계로 한동안 고립을 자처했다.


딸은 어쩌면 나름대로 상상한 ‘엄마’의 모습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실물카드를 꺼내느라 익숙한 리듬으로 허둥됐을 테고,

평소처럼 움직이는 딸을 셔터음과 함께 찰칵 댔을 테고,

“이거 sns에 올려도 되나? “ 하고 물었을 테고,

그녀가 상상하던 내 모습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을지도…

딸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늘 봐오던 내 리듬이 조금 낡은 리듬이 된 모양일까!


적당히 맹맹한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 디저트 시켜 먹을까? “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말하는 딸이 반가웠다.

‘굳이 또 언급해 봐야 크게 달라질 건 없을 텐데…‘싶은 거지

깃털같이 가벼운 목소리로 나는 ”바질 베이글에 쪽파 크림치즈 시켜줘! “ 라며 황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물이 들어 찬 화장실 슬리퍼를 세워두는 배려 따위 하기 싫어 그대로 벗어둔 것이 생각나서였다.

소심한 복수의 내 행동을 알리 없는 딸은, 세워진 슬리퍼를 지나 습관처럼 맨발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바닥에 깔린 수건을 잠시 밍기적거리다 곧장 바닥에 물 도장을 찍으며 걸어 나왔다.

잔소리할 핑곗거리가 생겨서인지,

낯설었던 딸의 모습이 아니여서인지,

체할 것 같았던 감정이 쑥 내려가서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딸은 나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딸의 시선이 나를 낯설게 보는 건, 그냥 숨 쉬듯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자잘한 소음이 있었던 우리 외출은 어느 누구나 겪을 평범함이었고,

이런 경험으로 딸은 자신을 느끼고 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겐, 이런 감정에 대한 내성이 조금씩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의 시작점이자 괜찮은 엄마로 곁을 비워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