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낯설다
제법 여러 날의 아침을 조용히 맞이하는 중이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적당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온전한 봄바람을 나눌 사람이 집에 없구나’
외로움을 자초하는 생각 따위를 흩트리듯 귀에 꽂힌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람에 흩날렸다.
마침 울린 지인의 카톡 알림음이 고요한 내 공백을 흔들어 깨워줬다.
다행이었다.
”오늘도 딸이 많이 보고 싶냐 “?
커피를 주문하고 밖이 적당히 보이는 자리에 앉은 지인이 내게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 나에겐 자극이 되어 목이 턱 막혀버렸다.
“늘 보고 싶지 뭐, 주말부부로 오래 지내다 보니 딸이랑 더 돈독할 수밖에 없었잖아 “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 공간을 만들며 앉느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했다.
행복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 타이밍에 예고 없이 들어차는 눈물이라니…, 코 끝이 매웠다.
“평일에 혼자 있어서 더 생각나긴 하겠다. “
대수롭지도 않은 듯 말하며 휴지를 건네는 지인의 행동에 현타가 와서 저절로 마음이 달래졌다.
정신없이 주제를 넘나드는 수다를 떨면서도 공통 관심사는 서울 보낸 딸들이었다.
“매일밤 늦은 시간 데리러 다니고, 학원에서 나오는 딸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하고…“
“하하하, 그러게 “
“학원에 있는 동안 우리끼리 즐기기라도 한날은 괜한 일탈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그렇지, 하하하하”
고생했던 재수시절 이야기를 하면 사정없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서 담이 올 지경이었다.
지인과는 초, 중, 고를 같이 보낸 만큼, 앉으면 얘깃거리가 쉼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마음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휴식인지 알기에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들춰내놓았다.
대학입학의 기쁨을 회상하며 말랑말랑해진 감정은, 이내 비어 있는 딸의 방 이야기에 가로막혔다.
딸이 독립 후 딸 방문을 꼭 닫아놓고 한 달간 들어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마음과 신체의 전원이 모두 꺼져 회복이 어려웠던, 딸이 떠난 자리가 너무 낯설었던 시기였다.
풀파워 F가 아닌 지인 역시, 빈 딸방 얘기에는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다.
끊임없는 이야기에 입꼬리를 한껏 벌리며 미소를 지어보지만 하필 잘 붓는 내 눈은 이미 마카롱이었다.
딸 얘기들로 시간이 꿀떡꿀떡 넘어갈 즈음 뿔테안경으로 가린 눈도 다행히 원래의 눈 모양새를 갖췄다.
날씨와 눈치싸움을 하다 나온 것 치고 우린 꽤나 생산적인 게으름이라 생각했다.
동네가 생활반경의 전부였던 그때로 돌아간 듯 마음공유만으로 또 며칠은 살아지니까!
그토록 바라던 인서울 대학에 딸이 입학을 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바랄 때는 언제고 단지 딸이 내 옆에 머물지 않아 힘든 마음에 어이가 없다는 거지!
‘옆에 둘걸 그랬나!‘ 싶다가 미친 생각이다 싶어 내 따귀를 후려갈귀는 상상에, 내가 참 별나단 생각이 들었다.
낯설다는 건 아마도 비워진 자리보다 아직은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 때문인 거지.
‘자려고 누웠는데 딸 생각이 나도 아무렇지 않은 것‘
아마도 내가 도달해야 하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학원 마치고 둠칫둠칫 걸어 나오는 딸의 모습이 생각나 혼자 웃게 되는 것에 더 익숙했다.
오가며 차 안에서 잠깐씩 하는 데이트에 행복했던 추억팔이, 무심코 지나갈 만한 휴대폰 속 사진들에 저절로 회상되는 내 회로를 탓했다.
아직은 익숙한 것들만 찾고, 그로 인해 위안을 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언젠가 낯선 풍경에 위로받는 날이 온다면 적당히 마음의 독립을 한 것일지 모르겠다.
‘내 시간 속에 늘 딸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라 괜찮다 ‘며 늘 위로하는 중이다.
늘 그렇듯 내 딸은 일과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했다.
스피커를 켜둔 채 저녁을 먹으며 쉼 없이 재잘거렸다.
“팀플 과제에 팀원한명이 너무 개인플레이를 하고 심지어 개인과제도 안 해와! “
“짜증 나는데 말도 못 하겠고…..”
공감을 바라는 한숨에 나는 “한 대 쥐어박을 자신 없음 그냥 그러려니 해”라며 과하지 않은 맞장구를 쳤다.
잘 준비를 마치고 각자의 침대에 누워 고1 때처럼 투털이가 된 딸의 말을 들어주며 잠이 들기도 했다.
어떤 날은 영상통화를 켜고 택배 온 옷들을 입고 패션쇼를 하기도 했다.
내일 입고 갈 옷들을 내게 컴펌받고 기분이 좋아진 딸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 딸에게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쩌면 더 괜찮은 엄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직 누군가의 엄마가 좋다.
엄마라서 가능한 일에 섣부른 마침표를 찍지 않을 핑곗거리가 생겨서일까…,
뭉근한 만족감이 들었다.
딸이 떠난 자리에 생긴 거대한 상실감은 앞으로 내가 채워나가야 할 숙제지만 그 숙제도 나만 할 수 있다.
조용해도 좋고 심심해도 좋은,
달콤한 게으름을 누릴 줄 알고,
하루가 아무 일 없이 순탄하게 지나가는 감정선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때,
온전한 나로 ‘쉬운 일상’을 살아가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괜찮은 엄마로 사는 것에 재촉하지 않고 서서히 완주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