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밀려나는 장바구니 맨 아래목록
“엄마, 뭐 해? “
딸은 톡과 함께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딸이 가족톡방이 아닌 개인톡을 보내는 경우는 딱 정해져 있었다.
sns업로드용 사진 여러 개 중 선택장애로 더 이상 본인의 눈을 믿지 못할 때, 혹은 마음에 쏙 드는 쇼핑템을 발견했을 때다.
오늘은 후자였다.
사진에는 미니멀한 긴 웨이브 머리의 모델이,
줄 이어폰을 목에 드리우고 한 손엔 테이크아웃 커피를,
다른 한 손으론 카멜색 스웨이드 재질의 숄더백 끈을 살짝 잡고 도심을 배경으로 걷고 있었다.
상의는 보슬보슬한 울 소재의 밤색 오버핏가디건을,
하의는 아이보리빛 코듀로이 팬츠를 스웨이드 부츠에 스타일링 해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법한, 그래서 더 친근한 스타일이었다.
잠시 훑어봤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이 정도라면 딸은 이미 본인이 입은 모습을 상상해 구매욕구 최고조의 상태로 내게 톡을 해댄 것이라 짐작했다.
소재나 디테일한 것들을 잘 잡아내는 내 안목을 믿고 그 감각까지 감안해 선택을 해 달란 것이다.
“뭐 하긴, 네가 보낸 모델 보고 살 빼야지 생각 중 ㅎㅎ 옷이야, 가방이야, 신발이야? “
사실 나도 사고 싶은 옷 두어 가지를 조금 전까지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뻘쭘할 때 보내는 ‘ㅋㅋㅋㅋㅋㅋㅋ‘와 함께
“가격이 좀 있어서 니트랑 바지를 고민 중”이라고 보내왔다.
마침 본색을 드러내기 위한 딸의 전화가 울렸다.
“엄마가 가디건을 사주면 나머진 내가 살려고”
딸은 매달 1일 용돈을 받고,
5일엔 아르바이트 급여가 들어온다.
그 외 비상금 통장이 따로 있다.
친척들에게 받은 명절용돈을 포함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대학 입학할 때 주신 축하금까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돈이다.
그래도 용돈에만 의지하지 않고 알바를 하는 것도, 비상금을 조금씩 불려 가는 것도 대견하다.
어떠한 이유든 여유로워 보이는 딸이 멋지고 때론 부럽기도 하다.
그날은 11월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으니 용돈통장이 애매한 시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옷을 사 달라는 건 비상금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것의 또 다른 의미는 내 비상금을 쓰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했지만 귀여웠다.
“가디건이랑 바지를 사줄 테니까 신발은 네가 사. “
가디건을 사주면 나머진 본인이 사겠다는 말에서 ‘바지‘를 굳이 ’ 나머지‘로 표현한 걸 보면 신발도 구매 대상에 있다는 게 틀림없다.
눈치가 너무 빨라도 탈이지만 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에 뭉근한 만족감이 들었다.
내 휴대폰의 쇼핑앱을 열어보면 이상하게도 웃음이 난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모아놓은 쇼핑 앱의 실질적 소비자는 거의 딸이다.
결제를 해도 장바구니엔 늘 남겨지는 것이 있다.
언제나 깔끔하게 비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바로 나의 위시템들이다.
1일에 되면 장바구니에 채워졌다가,
딸의 중간개입에 따라 비워지거나 혹은 맨 아래로 밀려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원하는걸 아직은 해 줄 수 있는 자체가 좋다.
딸과 함께 공유하는 이 일상이 무미건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마도 내 일상에 딸이 기꺼이 참여해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내 것을 망설임 없이 단번에 결제하는 일이 어렵다.
언제부턴가 딸은 내 위시템을 공유받고, 선택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어느 날 딸이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송장 스티커에 센스 있는 감동과 함께 내 위시템 중 하나를!
“엄마,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