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

특별한 동행:또 다른 행복으로 기억된 계절

by 윤슬


미세한 온기가 느껴지는 햇살이, 창문으로 여러 번 기척을 해왔다.

온전히 반겨줄 마음이 없는 척해보지만, 봄은 약속처럼 묵묵히 자리를 잡았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길목처럼 그 해의 시작은,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딸과 나의 특별한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섣부른 걱정만 자초하는 나와는 달리 딸은, 견디는 힘을 스스로 키워가고 있었다.

입시를 다시 시작하며 묵묵히 길을 찾아가는 딸 덕분에 나는, 차츰 삶을 예쁘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

아침 일찍 딸을 학원에 내려주고 늦은 밤 데리러 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반복이 감사했다.

‘재수‘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조금 더 머물러 주는 이 시간이, 사실은 내게 가장 귀한 계절로 추억될 것이 분명했다.


졸린 눈으로 차에 오르는 어떤 날은, 딸이 안쓰러워 오히려 내가 도발을 할 때도 있었다.

“오늘 하루 학원 쉬고, 엄마랑 놀러 가는 거 어때?”

번쩍이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흘겨보는 딸이 귀여웠다.

몇 초간 망설인 듯 입술만 달싹거리는 딸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엄마, 아껴둬!, 언젠가 내가 쓸 테니까”라며 딸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일탈을 약속하며 차에서 내려 씩씩하게 학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딸의 뒷모습이 흐릿해져 갈 때까지 바라보다 괜히 눈물이 차오르는 날도 꽤 많았다.

매일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짧지만, 그 사소한 순간이 참 좋았다.

딸에게도 그 공간만큼은 작은 안식처가 되길 늘 바라는 마음이었다.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계절의 바뀜은 꽤 빠른 속도감으로 와닿았다.

내 딸은 무너져도 바로 돌아오는 단단함으로 묵묵히 성장해 갔다.

그렇게 시간을 채워가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참 대견했다.

나는 잔잔하게 곁을 채워주며 함께 버텼다.

모의고사가 있는 날은 조금 이른 저녁이 찾아왔고 남은 시간을 온전히 함께 썼다.

함께 동네 카페에 들러 달달한 카페인을 마시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엄마, 내일 점심은 학원 밥 먹기 싫은데, 점심때 잠깐 왔다 가면 안 돼?”

딸의 가득 찬 설렘이 입가에 번졌고 그런 고요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일렁였다.

“왜 안돼, 당연히 되지!”

나는 익히 주변에서도 잘 아는 ‘눈물 많은 엄마‘였다.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또 눌려진 이 놈의 눈물버튼을 감지하고 최대한 꾹 누른 대답이었다.

그렇게 약속된 날은 좀 더 일찍 식당에 도착해 미리 음식을 주문하고 딸을 기다렸다.

시간을 조금 더 당겨 쓰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하면, 커피를 사 들고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학원까지 바래 다 줄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학원에선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도 벌점, 친구와 무리 지어 다녀도 벌점이다.

관리형 독서실의 당연한 규칙같은 것이지만 상막한 곳이긴 했다.

잠시 탈출한 딸이 쉼 없이 터놓고 갈 수 있는 1시간에 나는 최선을 다하곤 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순간이지만 우리에겐 값진 충만함으로 깊게 베어드는 시간이었다.


‘함께 버틴다’는 것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쉼 없이 계절이 지나갔다.

딸의 눈부신 집중이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주었고, 그렇게 단단해진 나는 딸에게 따뜻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조금은 지치고 고단했지만 그 결실은 약속처럼 찾아왔다.

이 아름다운 노력들이 결코 우리를 해 할리 없을 거란 확신은 딸에게 값진 안도감을 선물해 줬다.

‘입시공부’라는 이름하에 가장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며 값진 인생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예전엔 늘 바쁘게 흘러가던 딸의 학창 시절이 아쉬웠다면, 이 특별한 동행은 딸과 내가 나란히 머물 수 있는 귀한 순간으로 채워졌다.

입시의 종착역이 조금은 늦었지만 돌아보면 우리 모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색으로 남아있다.


긴 시간 노력한 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늘 빛나기를, 그 발걸음에 엄마의 응원과 사랑이 스며 있음을 기억해 주길…!

지금 떠올려보면 그 계절은,

실패와 성공을 온전히 함께 경험하며 또 다른 의미로 성장했다.

딸과 내가 훨씬 애틋하게 머물 수 있었던 특별한 동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