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한 번만에 될 줄 알았다
20살이 된 그녀는 책가방을 다시 들었다.
어수선했던 2월은 우리가 생각한 대본대로 흘러가지 않은 채 절반이상이 지나버렸다.
지인들과 상황공유가 꺼려지는 건 내 감정이 전이되들킬까 봐 두려워서일 거고!
눈에 띄게 소심해진 내 일상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현실이 슬펐다.
그럼에도 거실에서 바라보는 겨울하늘은 여전히 거슬리게 예뻤다
행복한 착각에 성급한 진실을 끼얹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예비숫자만 바뀌길, 그 기다림도 5일째!
딸을 희망고문하던 예비 5번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은 숫자 5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당분간 숫자 5에 구역질이 날 거 같았다.
수시 6 광탈과 정시예비를 받은 스무 살 그녀는 우리가 아는 그 뻔한 재수라는 걸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간절함에 추합을 기다리느라 재수학원 개강시기도 놓쳤다.
TO가 날 때까지 대기를 타야 했다.
또 대기라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런 허무함도 마음속으로만 허락될 뿐 우리 부부는 그 어떤 수선도 떨지 않았다.
”이대로 진짜 끝이라고?
“쳇! 감히 나를 안 뽑았다? “
그녀의 중얼거림이었다.
“딱 기다려라, 내년에 내가 첫 번째로 문 열고 들어간다! “라며 쿨하게 재수를 받아들였다.
아마 그녀도 수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그동안 물렁해졌을 마음을 굳히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녀는 학원에 등록할 때까지 독서실을 다니기로 했다.
그날은 꽃사진이던 지인들의 카톡프사가 작정한 듯 모두 애들 대학 입학사진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고 나도 그랬을 테지만 현실을 꼬아보는 것이 재수생 엄마의 특권이라 뻔뻔하게 생각했다.
그녀도 분명 친구들의 sns에 마음이 시렸을 텐데 3년을 메던 저 시커먼 책가방을 또 둘러메고 집 밖을 나섰다.
딸이 문밖을 나가자마자 배웅하던 내 얼굴에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
몸이 확 뜨거워졌다.
그동안 너무 참았던 걸까!
눈물이 예고 없이 쏟아졌다.
먹먹함의 그 어떤 전조증상도 없었다.
가득 차 있다는 겨를도 느끼지 못했는데 막무가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현관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내 어깨의 들썩임도 사정없이 확인시켰다.
꾸역꾸역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엄마! 나 텀블러 좀 챙겨줘”라며 아무렇지 않게 똑같은 목소리를 내던 그녀는 얼마나 솔직해지고 싶었을까!
모르긴 해도 먹먹해진 가슴을 삼키며 며칠밤을 흐느껴 울었을 텐데…!
친구들의 합격축하도 꼼꼼히 전하던 그녀였다.
내가 무너질까 악착같이 참고 있을게 분명해서 가슴이 시렸다.
늘 그렇듯 눈물 많은 극 F 엄마까지 배려하느라…
하필인 건지 때마침인 건지, 주말부부라 늘 비슷한 시간에 오는 남편의 전화는 한 시간이나 일찍 벨을 울려댔다.
목이 따갑도록 악착같이 울음을 삼켰는데도 “여보세요….. “ 는 완성되지 못했다.
“왜 우는데…”?
“H는?”
미숙한 표현에서도 무엇을 묻고 싶은지 단번에 알아차릴만한 다급한 목소리였다.
“H가 저 시커먼 가방을 또 메고 나가는데 가슴 한쪽이 퉁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아서…“
“친구들은 예쁜 핸드백 쇼핑하고 난리일 텐데…”
“너무 안쓰러운데 쟤는 내색도 안 하니까……“
“눈물이 그냥 후드득 쏟아져서…”
눈물을 먹어가며 이어갔더니 내 말이 또렷하게 새어 나오진 못했다.
“흰 가방 하나 사줘라! “
“시커먼 가방은 버리고”
이래도 이 남자는 애 얼굴만 봐도 눈옆에 백만 개 주름을 접고 웃는 외동딸 아버지다.
‘표현 잘 못 하는 이 남자의 최대 발언이겠지’
시커먼에 초점을 둔걸 탓하지 못한 채,
‘자기도 H가 오늘 독서실 가는 게 마음 쓰였구나 ‘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어색해할 남편 얼굴이 떠올라 그만뒀다.
그동안 아무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써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받아들였다.
우리의 솔직해진 마음을 들켰던 날이었다.
사실 내 딸이 특출한 아이는 아니었대도 남들이 좋아하는 타이틀을 곧 잘 이루어냈다.
진로의 방향성도 잘 찾아갔다.
수시 6장을 써내면서 합격을 예감했었다.
담임선생님이 학교장 추천전형을 제의하셨을 땐 그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확신이 들기도 했다.
합격은 뭔 합격!
줄줄이 예비로 희망고문이라니…
뭐가 잘못된 걸까!
순간순간의 성취에 만족만 했던 걸까!
‘괜찮아, 내일 더 잘하면 되지! ‘란 내 말버릇이 그녀의 성장을 멈추게 한 걸까
숱한 이유들로 자책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옆에서 봐왔기에 더 억울하고 공허했다. “
나랑 다를 것 없던 그들은 지금 행복해 미치는데.. , 나는 왜 이토록 억장이 무너져야 하는 걸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와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내가 못나보였다.
얼마나 울었던 걸까
눈이 잘 떠지질 않았다.
화장실 거울을 봤더니 얼굴이 가관이었다.
벌에 쏘이며 눈이 저렇지 싶었다.
‘딸이 곧 점심 먹으러 올 텐데…’
햄버거 두께만큼 부은 눈을 가라앉히려 서둘러 냉동실 문을 열었다.
아이스팩을 수건에 감싸 쥐고 소파에 기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울렸다.
그녀였다.
“엄마 하늘 예쁘네”
그녀가 무심히 신경 쓴 듯한 문장이었다.
“나 독서실 앞에서 커피랑 샐러드 사 먹을 거니까 엄마도 점심 챙겨 먹어 “
“나 없다고 또 대충 먹지 말고!”
찡끗 이모티콘과 하트도 빠트리지 않았다.
눈치 없이 또 흘러내리는 눈물을 아이스팩 감싼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며 다른 한 손으로 얼른 답을 썼다.
우리 딸 파이팅이라 썼다가 바로 지웠다.
“응~알겠어, 우리 딸~“
“저녁은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집 와서 먹어~~”
안정감 있는 답이 낫지 싶어 나름 고민한 문장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그녀가 묵묵히 시간을 써가는 동안 나는 과거에 박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찰나의 순간에도 그녀는 내게 위로가 되었고 곁을 채워줬다.
예쁜 하늘이 거슬린다 생각한 내 마음이 얼마나 꼬여있는지 실감했다.
창문을 열고 그녀가 예쁘다고 한 하늘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 카톡 배경사진은 그날의 하늘이었다.
지인 자녀의 입시성공소식에 애써 감정을 속이고 남몰래 울었던 우리 재수생 엄마들 모두 이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축하를 보내면서도 그들의 기쁨이 나를 더 아프게 해 온전히 축하만 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입시에 실패한 자녀가 나의 힘들어하는 모습에 더 좌절할까 싶어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그렇지만 아이들은 입시를 통해 자신의 실패와 남의 성공을 동시에 경험했을 텐데…!
참담한 현실에 당황하며 그 감정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시 재 도전이란 걸 하는 그녀가 한없이 대단해 보였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내가 느낀 공허한 감정은 남들이 좋아하는 타이틀을 얻지 못함이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난 ‘상실감, 공허함‘이라는 내 기분의 출처를 분명히 하려 애쓰고 있다.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되는 그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여전히 자기개발에 진심이다.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한 그녀가 밝게 빛날 수 있도록 나 역시 괜찮은 엄마로 여전히 곁을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