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

우린 서울역에 버려졌다 2편

by 윤슬


그녀가 콘서트중간에 나오는 걸 미룬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우리는 여전히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소리도 울릴 만큼 그 넓은 역사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문을 닫은 가게 유리벽에 비친 너덜너덜한 몰골이 수치스러웠다.

이미 말했듯이 드라마적 허용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린 서울역에 버려진 게 틀림없었다.


‘여기를 오지 말았어야 했나’

오늘 하루가 흑백사진처럼 스쳐갔다.

‘아씨! 이런 일이 진짜 우리한테 일어났다고?‘

속으로 조곤조곤 욕도 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내 시선은 역무원에게 간절함으로 닿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서울을 떠날 수 있는 교통편은 하나도 없었다.

도와줄 수 없는 직원의 당연한 외면이 괜히 미웠다.

볼품없이 앉아있는 그녀의 시선도 미웠다.

나는 있는 힘껏 한숨을 몰아쉬다 그 끝에 묵직한 한마디가 화로 섞여 나왔다.

“얘야!”

그녀는 억지로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본격적으로 혼내지도 못했구만…!

서러운 건지 두려운 건지 한쪽팔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할지도, 얼마나 미안한 감정이 들지도 알아챘지만 막막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생각이란 걸 했다.

‘내일 첫 KTX를 타면 그녀가 지각하는 일은 없어 ‘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확신에 차서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졌다.

‘이미 벌어진 일, 그녀에게 감정적이지 말자’

내일을 계획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건 틀림이 없었다.

정상등교를 할 수 있으니 안심하란 말을 빨리 해줘야 했다.

초라하게 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바짝 붙어 앉았다.

마음의 경계가 풀렸음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내 행동이었다.

서울역 주변 찜질방에서 쉬다가 첫 기차를 타기로 우린 생각을 모았다.

큰 숙제가 남아있다는 듯,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에 흘렸던 눈물이 아직 다 마르지도 못해 눈꼬리 쪽 속눈썹이 젖어서 서로 붙어 있었다.

‘아직 어린 내 딸, 얼마나 두려웠을까,“

‘모든 일을 가늠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지도…‘

‘지금 온전히 기댈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텐데…’

그 찰나에 통화가 시작됐다.

행여나 분위기가 침울하면 바로 휴대폰을 때 버릴 생각으로 그녀의 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싫어서였다.

따뜻한 온도의 남편 목소리와 그녀의 눈물을 보고 통화내용을 가늠했다.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 좋았다.이제서야 편하게 숨이 내 쉬어졌다.


거리에 뜨문뜨문 열려 있는 가게들이 반쯤 불을 켜놓고 정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새어 나온 불빛을 차례대로 등지며 우린 꽤 먼 거리를 걸었다.


가는 길에 있던 긴 계단에서 나는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저절로 멈춰졌다.

발바닥이 붙어버린 듯 해괴망측한 나의 허우적거림에 그녀는 웃느라 일어나질 못했다.

정강이가 아파서 심각하게 말을 듣지 않는 내 몸짓에 나도 웃음이 터져 주저앉아 버렸다.

단순하게 바뀌는 우리 기분에 어이가 없었지만 모든 감정에 때마다의 이유를 어떻게 알겠냐 싶은 거지!

덕분인 건지 웃으며 찜질방에 도착한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늘의 흔적을 씻어냈다.

한참 늦은 끼니를 먹으며 그녀는 눈치를 보다 슬쩍 미안하단 말을 흘렸다.

먼저 말을 꺼내주는 그녀가 다행이다 생각했다.

“걱정 마, 오늘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돼”

“좋아하는 걸 우선순위로 뒀을때 책임질 일은 생각보다 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네가 좋아하는 걸 내 우선순위로 둬서 일탈이란 걸 했으니 내일 너를 정상등교시키는 건 엄마 몫인 거지…”

그녀는 말없이 손과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생각정리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린 빨리 올라가 몇 시간이라도 자야 했다.

넓은 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

이제야 하루가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새벽 4시로 알람을 맞추고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으려 고개를 돌렸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반대편에 반쯤 기대 누운 남자의 폰 각도가 수상하게 느껴졌다.

우연히 방향만 이쪽으로 향했을지 몰라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

더 확실한 때를 기다려보자 생각했다.

‘설마’

‘내가 잘못 본거겠지’

애써 외면하려 해도 내 몸이 소름 돋게 반응하며 벌떡 일어나 졌다.

‘잠은 다 잤네, 어쩜 세 시간도 날 편하게 허락하지 않는 거지?’

‘오늘 이벤트가 도대체 몇 개야?’

본능적으로 잠든 딸의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려 덮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 끝에 잠을 포기했다.

빠른 몸놀림의 대환장 무빙으로 이불더미들을 갖다 날랐다.

그녀 주변에 그 더미들을 막무가내로 쌓아댔다.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아우라를 장착하고 주변을 경계했을 때 그 남자는 사라진 뒤였다.

‘소오름!!!’

무슨 일이 일어날 뻔한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앉은 채로 흔들리는 눈꺼풀을 치켜뜨느라 눈이 시렸다.

다크서클을 분장하면 내 얼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피로감으로 울려대는 알람을 껐다.

정말로 막 잠들었다고 느꼈는데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찜질방을 나섰다.


이불막이 세워진 이유를 무겁지 않게 얘기해 주며 우린 새벽길을 걸었다.

빠른 걸음에 여유 있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피로 해소에 도움 될 만한 음료를 사들고 우린 첫 기차에 올랐다.

평탄하게 잘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하는 그녀가 도착까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내 어깨를 내줬다.

엄마이기전에 나도 사람인지라 새벽부터 미뤄 둔 잠이 내 눈꺼풀을 괴롭혔다.

도착지를 지나치는 몸서리쳐지는 상상을 하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 바짝 힘을 줬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지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간을 당겨 쓸 준비를 단단히 한 우리는 플랫폼부터 택시승강장까지 또 내달리기를 했다.

아침을 먹여 학교를 보낼 내 계획에 맞게 집에 때마침 도착했다.

그녀가 세수하는 동안 세탁된 교복을 거실에 냅다 펼쳐뒀다.

2배속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국을 데우고 어느새 고등어도 한 조각 구웠다.

오늘 아침은 어쩔 수 없이 짱구의 아침 식사를 모방했다.

그녀가 교복을 하나씩 환복 하는 동안 국에 말아 놓은 밥 한 숟가락에 고등어를 얹어 입에 넣고 턱을 닫았다.

웃음이 터져 밥풀이 이리저리 튀어도 상관없었다.

아침은 꼭 먹고 다니는 딸의 루틴을 깨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을 시작한 듯 그렇게…


짱구식사법 덕분인지 그녀를 데려다줄 시간이 위태롭지 않았다.

“오늘은 학원 갔다 와서 일찍 잘 수 있도록 하루를 좀 당겨 써~“

짬시간 활용을 잘하라고 말하려다 고민 끝에 돌려 말했다.

“엄마도 나 내려주고 집에 가면 빨리 자~”

내가 잠 한숨 못 잤다는 걸 의식한 듯 걱정스러운 호흡이 느껴졌다.

바쁘게 나오느라 못 바른 핸드크림을 짜며 그녀는 조금 높은 톤으로 말했다.

“우리 이번 일 평생 기억나겠다, 그치?“

재밌는 답을 해줘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마침 신호에 걸려 시선이 자유로운 나는 그녀를 의미 있게 바라봤다.

“엄마가 무슨 말해주려는지, 무슨 걱정하는지 나 잘 알아~“

“그리고 고마워, 진짜!”

스스로 마인드셋을 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내 바람대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완전해지는 것에 조금 가까워진 걸까…

가슴이 벅차고 떨려와서 하고 싶은 말이 조심스러웠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거든”

“세상이 바라는 정답은 있지만 오답이어도 이유를 찾아내고 반복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소란했던 마음을 스스로 정리한 듯 평소보다 당차게 "응"이란 대답을 하는 그녀가 예뻤다.

대화가 적당하다 싶을 시간에 때마침 학교 앞에 도착했다.

방금 전에 서울에서 첫 기차를 타고 온 게 맞나 싶을 만큼 평소 같은 아침이었다.

항상 교문 앞에서 교통지도를 도와주시는 교장선생님께 머리 숙여 인사를 한 그녀는, 마치 내가 출발하지 않고 서 있다는 걸 아는 듯 몸을 돌려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음이 이완되듯 편했다.


우리의 외출은 허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게 되는 것도 반드시 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완전함에 이르는 과정은 그녀를 양지에 머무르게 만드는 자원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꿈꾸는 이상은 있지만 그 모습에서 더해지기도 하고 덜해지기도 하는 거니까!

내가 살며 겪은 신념들이 한 번씩 맞지 않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것 또한 뜻밖의 인생수업이 되기도 한다.

설령 그 방법이 모험적이거나 안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겪은 만큼, 그것을 통해 아는 만큼 그녀가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기대감으로 우리의 과감했던 일탈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기록해 본다.



벌써 대학교 3학년이 되는 그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날을 기억하냐고…

.

.

.

“평생 기억에 남을걸! “

“엄마 정강이 사건은 자다가도 웃음이 나”

“찜질방에서 이불막이 세워진 것도, 짱구아침도…”

“늦지 않게 교문에 나 내려줬을 때 엄마 좀 멋있….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