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

우린 서울역에 버려졌다 1편

by 윤슬

봄이 불러온 다음 계절도 어느덧 눅진한 공기가 익숙해져 가는 8월의 끝자락이었다.

덕질의 경의로움 덕분일까!

그녀는 내 바람대로 유연한 학교생활을 보내며 가끔 나와 시시덕거리는 여유를 즐기는 편이었다.

나 역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의 여유에 티끌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자 괜찮은 엄마로 곁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날아침은, 깨우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책상에 앉아있는 그녀가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전날, 딸의 경이로운 손놀림이 아직도 신선하게 배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고척돔 돌출무대 앞자리 티켓팅에 당당히 성공했다.

손이 저렇게 빠른 딸이라니 놀라웠다.

한 좌석씩 예매하다 보니 나란히 잡는 건 당연히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닌가!

내 자리 티켓팅은…

‘현저히 느려진 저 손 스냅 보소’

여러 번의 이선좌 창이 뜨더니 맨 뒷줄에 겨우 성공했다.

‘왜 실망하지? 나 덕질에 진심이었던 건가..!’

여기서 이선좌란 (’이미 선택한 좌석‘으로 거의 동시에 선택했으나 속도에 져서 예매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티킷팅을 했다는 건 ‘결국 그 TV프로그램에서 선발된 아이돌그룹의 쇼콘도 같이 보러 갔다는 것‘

무작위로 뿜어대는 그녀의 말솜씨에 넘어가 평일인데 덜컥 수용해 버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오늘 우리의 외출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선생님께 죄송해서 어쩌지?”

그녀는 대답대신 배시시 웃어 보였다.

“야! 엄마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

그녀의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뚝 끊어졌다.

운전 중이라 앞을 보고 말하는 나를 슬쩍 한번 보더니 그녀는 얼굴을 내 가까이 갖다 댔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다시 좌석에 등을 붙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짓’에 의미가 긍정인지 부정인지 확인하려 했던 걸까!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바쁘게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나 기말도 잘 쳤고 수행평가도 점수 잘 받았는데. “

“쌤이 면담하면서 이대로만 잘해나가자”라고 하셨고!

“혹시 쌤이 알게 되더라도 엄마 이상한 사람 안되게 잘 말씀드릴게 “

자신 있게 나열하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까랑까랑해서 웃음이 났다.

‘내 체면을 생각하는 게 아닌데…‘

그녀가 지금껏 올바르게 쌓아온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두 시간 전에 딸을 내려주고 왔는데 우리의 일탈을 알 리 없는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친절히 문자를 보내셨다.

“H가 배가 아픈지 힘들어해서 조퇴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선생님과 조화로운 관계를 잘 맺어 온 딸이 보건조퇴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우리의 일탈을 관대하게 허락해 버리신 선생님께 한없이 죄송해졌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 때문에 답장을 보내는 내내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있던 학교 진입로가 한산한 시간대에 온 적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르막길 바로 직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백팩을 메고 앉아 조퇴를 하고 나올 딸을 기다렸다.

억누른 양심 때문인지 건너편에 빼곡히 박혀있는 학원간판이 오늘따라 불편하게 보였다.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다 다시 향한 길 건너편은 여전히 거슬렸다.

불편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전환하려 괜스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움직임은 자유롭지만 태 자체는 신경 쓴 듯한 나를 내려다보다 연신 웃음이 났다.

‘이 상황에 패션을 의식하고 나왔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 익숙한 핸드크림 향이 진하게 났다

‘언제부터 와 있었지?’

손 선풍기를 손에 든 그녀가 짧게 접어 입은 교복 치마를 의식하며 서 있었다.

‘교문을 나오면 교복치마가 짧아지는 건 여고생의 국룰인 건가 ‘

그녀의 쇼콘 관람 의상이 교복이란 게 이 와중에 또 귀엽다 생각했다.

이왕 작정한 거 불편한 마음 접어두고 예상조차 되지 않는 일탈을 시작해 보자 생각했다.


택시에서 내려 서울로 가는 KTX에 올라탔다.

기차에서 먹을 이른 점심은 햄버거였다.

옷에 묻을 걸 예상하고 나는 큰 냅킨을 집에서 여러 장 챙겨 왔었다.

그녀의 목밑에 길고 큰 냅킨을 테이블까지 이어지도록 고정해 줬다.

물 티슈로 닦아가며 먹을 수 있도록 여러 장의 물티슈도 미리 접어 줬다.

내 오래된 습관이긴 해도 그날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깨끗한 복장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신나 보이는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 의식하기 시작했다.

교복 입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다 우리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같은 생각을 했을게 분명함을 알아차린 찰나 웃음이 터져서 입을 틀어막고 큭큭거렸다.

어쩌면 기차 안에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가진 동행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출처 없는 기대를 한 것이다.

괜히 귀를 바짝 기울이기도 했다.

“엄마, 노래랑 응원법 다 외웠어?”

그러리가…!

혼자 젤 뒷자리에 앉아, 열광하는 이들 사이에 있을 내가 신경 쓰였나 보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응원법을 연습하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집요하게 반복시킨 응원법이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수많은 팬들 사이에서 온전한 덕질녀로 살아남을 방법이었다.

이런 걸 하고 있는 내가 신기해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길 찾기 어플 덕분에 고척돔에 때마침 잘 도착했다.

계획대로 잘 맞아서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구름에 살짝살짝 가리어진 햇빛과 텁텁한 날씨에 잠시 다리를 스치는 바람도 좋았다.

귀에 익은 달달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낯섦도 금세 달래졌다.

본격적으로 굿즈 탐방에 나선 딸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이토록 정신없는 세상을 신선하게 눈에 담았다.

몸살을 예약할 정도로 육체를 혹사시킨 시간이 적당히 지나갔다.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10시에 여기서 만나자~”

“응~알겠어 엄마, 조심해~”

우린 막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쇼콘을 완성도 있게 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와야 했다.

무엇 때문인지 불안한 마음이 든 나는 조금 더 멀어지기 전에 크게 소리쳤다.

“중간중간 시간 잘 봐~“

“10시가 조금만 넘어도 기차 못타~알았지?”

그녀의 모습은 가려졌지만 들떠있는 대답이 또록하게 내 귀에 들려왔다.

“알겠어~있다 봐”

우린 서로 다른 입구를 찾아 각자의 길로 갔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무대가 4층 내 자리에선 손바닥만 하게 보였다.

왠지 모를 주눅이 들어서 이리저리 사진만 찍다가 빨리 불이 꺼졌으면 싶었다.

이내 어두워지더니 무대에 화려한 조명이 펼쳐졌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그들이 등장하자 큰 함성이 귀를 먹먹하게 메웠다.

온몸에 전율이 쫙 돋았다.

그녀와 오랜 시간 눈에 담아와서 그런지 내적 친밀감이란 것이 그녀 없는 나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

각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악착같이 매번 미션을 통과한 결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종 선발된 아이돌 그룹이었다.

온전한 한 팀으로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노력해 왔을까!

‘그녀도 저들처럼 목표를 달성하는 벅찬 순간이 오겠지’

이 와중에 혼자 또 몰입하며 감성충만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약속한 시간에 다 달았다.

나는 입장했던 길을 더듬으며 서둘러 되돌아 나갔다

내가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9시 55분이었다.

5분 정도 남았으니 저 먼발치에 그녀의 형상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나는 기다리다 여러 번 전화를 해댔다.

받지 않는 전화에 짜증을 담아 중얼거렸다.

’ 미친! 에이 설마!’

‘뛰어오느라 못 받겠지…’

오만가지 생각에 겁이 나서 울려대는 남편의 전화도 오랜 텀을 두고 겨우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서울역 가고 있는 거지?”

쇼콘 중간에 나와 막차를 타고 갈 계획을 공유받은 남편의 이유 있는 짜증이었다.

남편의 다그침에 기죽은 목소리로 겨우 ‘여보세요‘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가고 있냐고!”

눈옆에 백만 개 주름을 접고 웃어주는 남편의 얼굴은 당분간 볼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아직…”

“사람들 사이에 막힌 건지 아직 안 나오네…”

퍼뜩 머릿속에 떠오른 핑계가 고작 저거였다.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막힐 리가…’

아무 말이나 했던 거 같다.

이상하게 내가 그녀를 혼내는 건 괜찮은데 남편이 혼내면 그게 그렇게 섭섭하다.

“나오고 있겠지, 이제 10시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서울역 도착하면 전화할게~”

내 불안함이 전이될까 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20분이나 늦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내 표정을 봤다면 겁먹은 채 입술이 마른 척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설레고 행복한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입힌 그녀는 애꿎은 가방끈을 말았다 폈다 하고 서있었다.

“제정신이니?”

정적이 흘렀다.

“여기 서울이야!”

“택시 타고 집 갈 수 없는 거리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내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발을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일어나려 하는데 최애가 갑자기 돌출무대 쪽으로 오더니 내 바로 앞에 서잖아”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걸까!

“눈앞에 최애가 있는데 어떻게 나와, 못 나오지!”

아직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었다.

빠른 걸음에 숨이 차도 기필코 말해야겠다는 의지를 꺽지 않은 그녀는, 발에 체중을 실어가며 탕탕 걸어갔다.

“지금 가면 충분히 막차 탈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안가보고 혼내? “

이 와중에 투덜이 할당 채우는 건가 싶어 입을 막아버릴까 하다 참았다.

길 찾기 어플을 봐가며 한 뼘 정도 앞에 가던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며 표정을 확실히 했다.

고척돔을 빠져나올 때까지도 곳곳에 붙어있는 그들의 사진을 두리번거리는 그녀였다.

그녀를 당기는 내 손이 다정하지 않음을 느낀 걸까!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내 걸음에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넓은 고척돔을 겨우 빠져나오니 우리처럼 중간에 나온 사람들이 택시잡기에 줄을 보태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하철을 선택한 우리는 가는 내내 남은 역 개수를 세어가며 냉정하게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봤다.

2분을 남기고 서울역에 도착해 버린 우리는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정신과 따로 노는 내 다리근육 때문에 짜증이 났다.

정강이가 아플 만큼 뛰어봤자 안 되는 거리였다.

플랫폼까지 뛰어내려 갈 뻔한 우리를 직원이 잡아 세우며 막차가 이미 출발했음을 굳이 말로 알려줬다.

‘거.. 거., 짓말…’

우리와 같은 상황을 이미 겪은듯한 난처한 몇몇 무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쭈뼛거림으로 직원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막차 놓치신 거 맞아요”

친절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얼른 표부터 최소 하셔야 돼요 “

뒤통수가 뜨겁게 데워졌지만 쉽게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심하게 달려와서인지 막차를 놓친 두려움 때문인지 심박수가 격하게 요동치는 느낌이 불편했다.

등에 흐르는 땀의 축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꿈이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적 허용으로 갑자기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린 서울역에 버려진 게 분명했다.


‘오늘 외출을 수용해 버린 내 탓인 거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내 착각이구나, 결국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녀에게 하루를 선물하고 2학기도 유연하게 지내보자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생 기억되는 모먼트라 확신하며 쉬어가는 여유가 꼭 크기에서 나오지 않음을 알려 주고 싶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은 오늘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한 발짝 떨어져 서 있는 그녀의 심장소리가 신경 쓰였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곧장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굳이 이유를 묻는 것에 감정적이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마침 앉을자리가 수 없이 많은 핑계를 대며 한 발짝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나란히 앉지 못한 채 각자 생각에 빠졌다.

내일 그녀를 제시간에 등교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여러 번 스쳐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등교’

‘지각‘

‘고1 이면 지각 한번 괜찮나!‘

‘첫 기차 몇 시지?‘

‘잠은 어디서?‘

수도 없는 문장들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오늘 우리 외출이 그 표면적 뜻의 일탈이 되어선 절대 안 된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실은 몹시 두려웠다.

목표만 보고 똑같은 길을 가는 것보다 돌아서 가더라도 그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내 생각이 그녀에게 닿아 더 이상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없으면 어떡하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외출을 잘 마무리할 계획에 힘을 실어보는 방법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감당할 수 있다고 확신한 내 선택에 절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이전 01화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완주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