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노을이 지는 시간, 사라지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02

by 유선미

<노을이 지는 시간, 사라지는 것들>


하루 중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제일 좋다. 노을은 지친 우리에게 매일 신이 주시는 선물이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은 찬란한 노을을 보며 털어버린다. 당신과 함께 캠핑을 가서 노을을 보는 상상을 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오늘도 당신이 아주 많이 그립습니다."


물론 노을은 금방 사라진다. 알면서도 늘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괜찮다. 이별한다고 해서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죽기 때문에 살지 않겠다는 말처럼 말이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라색으로 물드는 하늘, 오래되어 색이 바랜 나무 책상, 그 위를 비추는 주황색 불빛 그리고 공기를 감싸는 음악. 때로는 잔잔하고 몽환적인 인디 음악이었다가, 때로는 노랫말이 없는 피아노 연주가 흐른다.


익숙한 공간은 편안함을 준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조금씩 꺼내어 하얀 종이 위에 글로 쓴다. 창밖의 황홀한 빛이 이내 흰색 커튼 위에 내려앉는다. 바람이 불고 빛이 부서진다.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이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익숙함 속에서는 소중한 것을 놓치기도 한다. 낮에는 밝은 빛으로 인해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집중한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들에 반응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환한 빛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푸른빛의 저녁 하늘

푸른빛 저녁이 되면, 세상은 더 조용해진다.

낮과 달리, 소리에 더 민감해진다. 시야는 어둠으로 모호해지지만, 낮에 들을 수 없었던 소리들이 들리고 낮에 보지 못했던 다른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톡톡톡’ 산책을 하는 내 신발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와 ‘꼽꼽‘ 개구리 소리도 들린다. 누군가의 집 마당에 있는 분수에서 ’딸깍‘ 떨어지는 물소리도 정겹다. 환한 낮이었다면 귀 기울이지 않았을 소리들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눈을 감아야 또렷해진 마음도 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같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잃고 난 뒤에야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여유롭게 내 앞을 걸어간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밤하늘을 날아다닌다. 바람이 나무를 휘감다가 사라진다. 나는 이 장면들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녹음한다. 저녁 산책을 하는 이유이다.


마침내 사라지는 것, 잃어버린 것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도 노을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 그 시간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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