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은 선택인가, 필연인가?
타락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어떤 이는 환경을 탓하며, 또 어떤 이는 본성을 탓한다.
그러나 둘 모두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적 장치에 불과하다.
타락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부에 심어진 씨앗이며,
환경과 조건은 그 씨앗이 발아할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출 뿐이다.
인간은 선함을 강요받으며 성장한다.
어릴 적부터 “착해야 한다”는 말로 길들여지고,
사회는 그 길들여진 인간에게만
최소한의 생존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억압의 과정에서
억눌린 욕망과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교묘하고 치명적인 형태로 변질된다.
사회가 규정한 선이란 결국 통제를 위한 도구였고,
통제는 늘 균열을 낳는다.
인간의 타락은 그 균열 속에서 피어난다.
타락은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선택이라 불리는 그 순간조차 이미
누적된 본능과 억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들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본성을 믿는가? 아니면 사회를 믿는가? 둘 다 믿지 마라.
본성은 원초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사회는 그 욕망을 부정한 채 겉으로만 정당함을 포장한다.
결국 인간은 어느 쪽에서도 완전하지 못한 존재다.
선도 악도 모두 만들어진 허상이며,
타락만이 유일하게 진실하다.
인간은 늘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어 한다.
뉴스 속 범죄자, 배신자, 타락한 권력자를 보며
스스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그 거울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라.
그 안에 비친 얼굴은 당신의 얼굴과 닮아 있다.
상황이 달랐다면, 조건이 달랐다면,
당신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타락은 특별한 일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공유하는 구조적 운명이다.
그러니 타락을 ‘이상한 예외’로 취급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큰 위선이다.
타락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된 필연이다.
그리고 그 필연을 부정하는 순간,
당신은 더 쉽게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은 방심을 낳고,
방심은 언제나 가장 깊은 타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말 ‘타락하지 않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단지 타락할 기회를
아직 가지지 못했을 뿐이 아닌가?
타락은 선택이 아니다.
타락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었고,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환경과 상황이 그 문을 열어줄 때,
당신은 그 문턱을 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