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붉음은 부재의 말이었다 침묵의 외침
붉게 피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에 대하여-
한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부재와 침묵 혹은 사라짐이라는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한 송이 능소화가 피어나는 순간은 누구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담장 너머, 나무 끝, 시선에서 조금 비껴선 곳에서
그 꽃은 줄기를 타고 조용히 올라가고
아무 말 없이 붉게 피어난다.
그렇게 존재를 드러내기보단 자신만의 시간을 견디는 쪽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시간 끝에서 꽃은 결국 땅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게 되는 순간은,
붉게 물든 채 밟히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온다.
시 <붉은 기억> 은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한다.
피는 동안 아무도 보지 않았고,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갖게 되는 존재.
그것은 능소화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한 시절의 사랑, 혹은 누군가의 삶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말없이 피어 있다가 붉은 흔적 하나 남기고서야 비로소 "있었다"는 증거를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조용히 피어 있는 능소화를 바 라보며
1부를 썼습니다.
피는 동안 아무도 모른 채,
담장 너머에서 고요히 제 시간을 견디는 그 꽃이 인상적이었지요.
그런데 며칠 뒤, 그 꽃이 땅에 떨어진 자리에 남긴 붉은 흔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피어 있을 땐 몰랐던, 떨어짐의 순간에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의 의미.
이번 글은, 그 순간의 감정에서 이어진 2부입니다.
붉게 피어 사라지기까지 능소화는 얼마나 많은 침묵을 견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