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5교시가 시작하기 10분 전. A가 찾아왔다.
쌤. 외출증 끊어주세요.
왜? 무슨 일 있니?
조퇴 아니니깐 괜찮잖아요.
외출증 끊어주세요.
음... 무슨 일인지 알려줘야
샘이 끊어줄지 안 끊어주지 결정하지?
작년에 친하게 지내던 누나들이 왔는데요,
한 누나가 병원 간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친구가 경찰서에 볼일 보러 가는 데에
따라가려고요.
누나들이 와서 반가웠나 보네?
근데, 작별 인사는 여기에서 하고,
다음에 또 보자고 하고 교실에 들어가자.
아니에요~금방 갔다 온다고요~
친구 경찰서에도 가고요!
조퇴도 아닌데
조퇴는 아니지만,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지.
지금 네가 나간다고 하는 일은
네가 꼭 가야 할 자리,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닌 것 같아.
A야.
있어야 할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쌤이 보니깐,
지금 너는 교실에 있어야 맞는 것 같아.
녀석은 화가 올라오는지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어쩌랴, 모른다면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지.
끊어주세요!
이건 아닌 것 같네.
아,, 그럼 엄마한테 전화해 보세요!
엄마에게 뭐라고 전화를 해?
외출증 끊어줘도 되나고?
이건 선생님이 허락을 못 하는 건데,
왜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할까?
녀석은 할 말이 없어지자 계속 씩씩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버티고 앉아있다.
나는 모르는 척. 아주 평온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모습으로 얘기했다.
사랑하는 A 씨!
그대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는
교실이에요.
교실로 가세요~~~
그러자 녀석은 벌떡 일어나 나간다.
잠시 후 5교시 시작.
녀석이 있나 없나 교실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없다.
밖을 내다보니 녀석과 친한, 다른 반의 여학생 00 이와 남학생 00 이가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녀석은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A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에 대해 모르고 있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거칠게 말하면 결국엔 엄마가 허락해주고 선생님들이 허락해주었기에 늘 하고 싶은 대로 해 오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굳어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이 아이가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만 하도록 달래 가며 다독여가며 모시듯이 데리고 있다가 졸업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생각해보니 답은 "아니다"로 나온다.
녀석은 고등학교 생활에도 적응해야 할 테고 사회생활도 하게 될 터.
언제까지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저 오냐오냐 받아주기만 하는 것이 녀석을 "진정으로" 위하고 아끼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과 엄격한 훈육이 조화된 아름다운 방법으로 아이를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이 아닌, 때로는 과장된 훈계가 녀석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분노하게 만들어 녀석이 온갖 욕을 내게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아무 일도 아닌 듯. 넉넉히 받아낼 만한 준비가, 나는 되어 있는가?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를 뛰어넘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무거운 숙제 앞에서 나를 피식 웃게 만드는 건.
오늘부터 모둠 일기를 쓰자며 제안하는 내게, "쌤!!! 멋져요!!!!"를 외쳐주던 우리 반의 또 다른 매력쟁이 D의 목소리와 제스처. 그것이다.
이처럼.
무거운 마음을 녹여주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그래.
다시.
힘을 내보자.
공사를 시작해봐야지.
201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