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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Oct 15. 2021

'쎈 언니'가 나타났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학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하며 설렘과 긴장으로 2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고, 3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첫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준비하고, 환영 플랑을 만들어 칠판에 붙이며, 내가 담임할 때 이토록 행복함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작년 수업시간에 만났던 아이들을 담임하게 되는 거라, 부담감은 없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교과'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와 담임으로 만날 때는 또 다르기에 아이들의 좋은 모습만 보기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먼저 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조금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보인다면 함께 고쳐나가면 될 거라는 기대(?)를 했다.


첫날부터 눈에 확 띄는 여학생이 있었다. M이라고 부르자.


M은, 작년 수업시간에 봤을 땐 언제나 해맑고 잘 웃고, 외모도 예쁜 아이였다. 뭐, 공부에 그리 많은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했기에 예뻤다.


그런데. 우리 반 교실에 앉아있는 M의 모습은 작년과 사뭇 달랐다. 화장기 없던 깨끗한 얼굴대신 아이섀도우에 빨간 립스틱까지 진하게 바르고 교복은 입지 않고 튀는 색의 사복을 입고 앉아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눈빛도 달라져있었다. 저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쎈 언니의 이유 있는 반항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의 입술에서도 빨간 립스틱이 번들거리고 있고 눈에선 핑크색 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 이걸 어쩐담!'

그냥 두기엔 너무 과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분위기를 쉽게 타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생활지도가 무너질 것이 뻔했다. 첫날은 가볍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교칙에 화장 금지인거 알지?
내일은 깨끗한 얼굴로 만나자!


그런데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M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뭐지?


다음날, 여전히 신부화장 하듯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나신 M. 다른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하는 반면, M은 대놓고 보라는 듯이 사복까지 입고 있다.


아직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도 전에 이 아이를 너무 혼내면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을 뿐더러 원수(?)가 되기 딱 좋겠다 싶은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날, 종례신문에 이렇게 적었다.


"학교 규칙은 화장 금지입니다. 하지만 꾸미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은 여러분의 심정 이해해서 선생님이 중재안을 내놓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정도만 하세요. 빨간 입술, 핑크 섀도우는 노노! 자신의 입술색과 같은 립글로즈 정도만."


M이 종례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기에, 


잘 읽고 있지?
내일은,
좀 더 깨끗하고 단정하게 오자!
 

싫은데요?


뭐? 싫다고?


네. 계속 할 건데요?


실실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M을 향해 나는 어떤 표정,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러면 피곤해질 거야, 학교생활이.
 잘 생각해 봐.


이렇게 이야기 하고 퇴근한 날 밤. 내내 마음이 찜찜했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아이를 어떻게 1년 동안 끌고 갈 것인가. 


다음날, 여전한 M의 모습.


사실 M은 키고 크고 얼굴도 예쁘다. 화장을 안 해도 예쁘지만 과한 화장 때문에 더 강해보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자기들의 세상에선 그게 예쁜 것이니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을 터.


종례를 마치고 M을 따로 불렀다.


계속 이렇게 진한 화장에, 사복 입을 거야?


네.


왜? 학교 규칙 어겨가면서?


제가 1학년 때 너무 눌려 살아서
이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이건 또 뭔 소리인가.



그게 무슨 말이야?


쌤도 아시잖아요.
작년 저희 반 분위기.
그래서 이젠 자유롭고 싶어요.


그랬다. 작년에 이 아이의 반은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올해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니, 이 녀석이 나를 물(?)로 본 건가?


네가 이렇게 고집부리면서
규칙을 안 지키면
샘하고 계속 부딪칠 텐데, 그래도 좋아?


(끄덕끄덕)


음..샘이 학생부에 넘겨도 좋아?


네.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예요.


웃지라도 않으면 밉기라도 하지. 그 예쁜 얼굴로 계속 웃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고민하다 작전을 바꿨다.



야! 너, 너 이렇게 키도 크고
이렇게 예쁘고 이런데,
여기에 교복까지 딱! 갖춰 입으면
 완전 교복 모델이지 교복 모델!


그러자 M은 키득키득 웃으며 답한다.



교복 불편하단 말이에요!


불편해도 다 입잖아.
누군들 편하게 안 입고 싶겠어?
그리고 이 예쁜 얼굴..어쩔 거야.
이렇게 예쁜데 왜 화장품으로 덕지덕지...뭐야.



예쁘잖아요.


안 예뻐.
너무 진해서 안 예뻐.


예쁘거든요.


아니야. 자연스러운 게 예쁜 거야.
잘 생각해봐. 어떤 게 진짜 예쁜 건지.


너 사춘기야?


(끄덕끄덕)


무조건 막 반항하고 싶고,
 다 아니라고 하고 싶어?


네.


흠...


계속 웃으면서 실룩이던 M은 끝끝내 그렇게 다닐 거라고 이야기 하고선 교무실을 나섰다.     



달라진 그녀

다음날 아침.

주번인 M이 오지 않아, 함께 주번인 D와 함께 교실을 쓸고 있는데 40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M이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데.! 와우!


M이 깔끔하게 교복을 다 갖춰 입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화장은 했지만 조금 연한 상태로.) 감동했다. 통한 거다. 칭찬으로 위기 극복! 성공이다! 마음이 뿌듯했다. 자리로 와서 앉으려는 M을 안으며 말했다.



오매! 예쁜거~!!!
이렇게 예쁘구만!


M은 쑥스럽게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D가 말했다.



야! M!
네가 안 와서 쌤이 청소하셨잖아!
빨리 쌤 빗자루 들고 청소해!



그러자 M이 말했다.



쌤!
 저는 제 인생에 주번, 청소,
이런 거 해본 적이 없어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역시, 수업시간에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 그럼 지금 해보면 되겠네!
샘이 다 쓸어놨으니,
너는 쓰레받이로 받아서
쓰레기봉투에 넣기만 해.
 화이팅!!!


그러자 M은 어쩔 수 없이 빗자루를 받아들고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날 종례신문은, 내가 감동받은 사연(?)으로 가득했다. M이 교복을 갖춰입고 와서 감동했다. D가 청소하는 샘을 향해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서 감동이었다 등등...!


종례신문을 읽던 아이들이 왜 자기는 칭찬해주지 않냐며 아우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너무 잘 하는 아이들은....내 시선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ㅠ.ㅠ)  


   

몰랐더라면 좋았을 일

그리고 오늘.

다시 M은 사복에 풀메이크업으로 등교하셨다. 우하하하! (ㅠ.ㅠ)


그래, 하루라도 내 말을 들어준 게 어디냐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알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알고야 말았다.


어제부터 번호대로 남겨서 상담을 하는데 오늘은 M과 상담하는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제 네가 교복입고 온 거 정말 감동이었다고 했더니, M이 몸을 빌빌 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선생님의 말 때문이 아니라, 아침에 학교 오려고 하는데 먼저 등교한 친구가 오늘 선도부에 완전 대박 짱 무서운 여자 선배가 서있다고 교복입고 오라고 전화해서 선배가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교복을 입고 왔다는 것이었다. (ㅠ.ㅠ)


그렇다. 선생님 말은 무시해도, 무서운 선배는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중딩들. 아...나는 어제 혼자 뭘 한 거였나...자괴감이 들려는 찰라! 머릿속에 번뜩이는 게 있다.


여자 선배를 무서워하는 우리 무서운 중2. 아침 교문지도는 여자 선배들로 쫘악! 세워두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잡히지 않을까?!!!


그러면 애들이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려나 (@.@)


M은 지난 2월, 정신적으로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해보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로 강한 것이 아님을, 오늘 상담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려나?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면의 자신감을 쌓아주는 것. 이제부터 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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