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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Dec 20. 2023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거나 한 일이 요즘은 별로 없다. 하지만 침대옆에 책을 쌓아놓고 종일 커튼을 친 채로 소설이나 읽기로 한 날은 그 결심 자체로 너무 좋다. 특히 그날이 비가 올 예보가 나붙고 잔뜩 흐려 어두운 날이라면.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잠시 한 눈 팔면 오전에서 오후로 또 밤으로 휙 날아간다. 누가 숙제를 준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루틴으로 종일 동동거리다가 너무 피곤해진 토요일 아침은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기로 하고 책을 읽는다.
글을 쓰는 것도 생각해 보면 언제나 좀 민망한 일이다. 일기가 아니고서야 브런치에 올리면 누군가가 읽는 글이 되는데, 왜 내가 글을 올리지 왜 글을 쓰지 하는 생각이 들면 쓸 수가 없다. 쓰다가 만 글들이 서랍에 쌓여간다. 왜…를 생각하면 뭐든 멈추게 된다. 확실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사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는데 이유가 없는 것을 알아챌까 봐 다들 바쁘게 살고 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유튜브에 결재하고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놀라운 세상이다. 코엔형제의 <인사이드 르윈>. 한글 제목이 이렇다. 한 사람이 폐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것 같다. 하지만 찾아보니 원제는 Inside Llewyn Davis이다. 르윈 데이비스라는 남자의 며칠이야기다.
진지한 미국영화를 보며 자주 느끼는 건데 왜 그렇게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절망적인지 모르겠다. 감독들은 집요하게 그 희망 없음과 고단함을 파고 들어간다. 마치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즐거움으로 잡다하게 위장하고 있다 해도 기어이 삶의 본질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처럼. 몇 년 전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노마드>를 볼 때도 그 황량함에 목이 졸릴 것 같았다. 영화 속 사소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도 어찌나 시니컬하고 우울한지 르윈 데이비스가 결국 미치면서 끝이 나나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이 이어지듯이 르윈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계속 기타를 들고 거리를 헤매며 하룻밤 잘 방을 구걸하며 살아갈 것이다.
2013년 영화다. 가장 부유한 국가라는 미국의 내면적 황폐함이 드러나는 거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읽은 소설 <스토너>는 기묘하게 재미있는 책이었다.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이 배경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악의적이다. 왜 그런지 아무런 이유도 보여주지 않고 냅다 그렇다. 그 악의라는 것이 너무 미묘하고 은밀해서 서서히 기어올라가는 담쟁이덩굴들 같다. 결국은 한 건물을 다 뒤덮고 마는. 그렇게 차가움과 외로움과 건조함에 휩싸인 채 스토너는 죽는다. 마치 르윈 데이비스가 끝도 없이 걸으며 서서히 절망해 가듯. 문장도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 이 소설이 작가가 살아있을 때는 알려지지 않다가 사후에 빛을 봤다고 한다. 왠지 자꾸 작가와 주인공 스토너가 일치되면서 마음이 아프다.
흐린 날 이런 소설과 영화를 보는 간간히 빵을 구웠다. 저녁엔 단호박 수프를 끓였다. 연한 노란색으로 만들어지는 단호박 수프가 얼마나 예쁜지 계속 저으며 맛을 봤다. 일부로라도 집에 구수한 빵 냄새를 날리고 달콤한 수프향을 배기게 하고 싶은 날이다.
소설 보는 날, 좋은 날이다.
영화 보는 날,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