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omewhere
Dec 30. 2023
눈이 펑펑 내린다. 그야말로 펑펑.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걸 창 밖으로 내어다 보는 게 내 오랜 꿈이었다.
꿈을 이루었다.
굵은 솜털 같은 눈이 마치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모자이크 종이인 듯 세상을 채워나간다.
사람의 영혼도 이렇게 눈송이 조각처럼 날릴까.
껀정한 키에 건들건들 걷던 그의 움직임이 떠 오른다. 당최 반듯이 서서 반듯하게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 늘 건들거리며 말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좋아했다. 많이.
포르투갈을 걸으며 걷기가 너무 힘들 때 서로 잡담이나 하자며 좋아하는 배우 말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단연코 그를 말했다. 언제부턴가 그는 나의 원픽이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형이었다. 가늘고 긴 이미지. 건들거리는 몸짓. 그리고 중저음.
‘나의 아저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드라마였다. 거기서 그가 연기한 박동훈은 생각만 해도 가슴 아리다.
그렇게 연기할 수 있다면 그 내면이 그 배우에게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렇게 쓰라리게 인생을 감내하며 살아가 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큰 폭풍이 악의적으로 몰아친다면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계에 도달했던 것일까.
갑자기 그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그렇게나 연기를 잘하던, 언제나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보고 싶게 하던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는 건가.
그의 육체가 마지막 가는 길은 어제 다 지켜봤다.
코맹맹이 소리 같기도 한 저음의 목소리와 그 처연했던 아저씨 눈빛을 하던 그 영혼은 어디에 있는 건가.
저 하늘 가득한 눈송이들 속에 묻혀 떠도는 건가.
이미 죽어버렸는데 너무 큰 고통 속에서 죽어갔는데 어찌 평안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가 간 나라를 결코 알 수 없으니 그곳에서는 평안하라 잘 쉬라 말할 수도 없다.
그가 견뎠을 시간이 상상이 안된다.
눈이 내린다. 세상을 다 지울 듯 내린다.
그는 믿을 수 없이 가버렸고 눈은 펑펑 내린다.
세상은 때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처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