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근이의 결혼식

축하한다

by somewhere

길근이가 결혼을 했다. 지난 구정에 만났을 때 어느덧 마흔이 넘었다 해서 깜짝 놀랐다.

초등학생 때부터 보아오던 길근이가 벌써 마흔 줄에 들어섰다니...

길근이는 시댁 오촌쯤 되는 조카다. 남편 사촌형의 아들...

시골이다 보니 명절이면 어김없이 시어머니께 인사드리러 왔다.

선산이 있는 마을에서 사는 작은댁에 큰댁식구들이 성묘를 마치고 들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길근이는 남편 집안의 장손이다. 큰 집 큰 아들의 장남.

내가 막 결혼을 해서 시댁에 가서 처음 맞은 추석에 그 아이랑 옥상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 큰 댁 식구들이 인사 와서 밥도 먹고 오랫동안 놀다 갔다. 오랫동안 홀며느리였던 나는 그 손님 치다꺼리를 다 해야 했지만 어느짬에 길근이랑 옥상을 가서 놀았는지 모르겠다.

일 년에 두 번씩을 보던 길근이는 클수록 말이 없어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단지 경제적으로만 어렵다면 그나마 괜찮을 것을, 길근이의 아버지가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술만 마시면 여기 전화를 해서 한탄에 푸념에 화를 내며 앵짜를 부렸다. 직계 형제도 결혼하면 사느라 바빠 멀어지기도 하는데 사촌동생집까지도 전화를 해서 술주정을 하는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결국 길근이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고 어린 길근이는 그 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표정도 없고 무거운 길근이가 되었다. 우리 모두 길근이를 보면 한숨이 나왔다. 누가 시집을 오겠는가. 골치 아픈 시아버지에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있으니......

그야말로 답이 없는 인생을 살던 길근이 아버지는 작년 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구정 때도 멀쩡히 뵈었는데 몇 달 후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채 1년이 안되어서 길근이가 결혼을 했다.

집 나가서 재혼을 하셨던 길근이 어머니가 화사한 모습으로 혼주 자리를 지키셨다. 길근이는 너무 의젓하고 멋있었다. 신부도 복스럽고...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친척들은 한마음으로 길근이의 결혼을 축하했다. 그 아이가 말없이 감내했던 고통의 무게를 다 알기 때문이다.


식이 끝나고 식사를 하며 길근이 고모가 '오빠가 속은 썩였지만 그래도 형제라 그런지 조금만 더 살았으면 길근이가 결혼하는 것을 봤을 텐데 하는 짠한 마음이 든다'라고 아쉬워하자 즉각 남편이 답을 한다.

"형님 살아계셨으면 길근이 결혼 못한다."

다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다. 그 양반이 돌아가셔서 길근이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렇게나 자식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도 있다.

길근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남편과 나는 해외여행 중이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길근이가 그렇게 서럽게 울더라고 했다.


예복을 입고 함박웃음을 웃는 길근이를 보니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는지 모르겠다. 다들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많은 스토리가 얽혀있을 길근이 엄마와도 반갑게 손잡으며 인사했다. 다들 그리저리 어쨌거나 서로가 평안히 잘살아주길 진심으로 원했다. 길근이 엄마와 결혼하신 분도 오셔서 보기 좋았다. 그분이 가슴에 꽃을 꽂고 혼주석에 앉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길근이 작은 아버지나 고모들 생각은 다른 듯했다.


한 가족 위에 오랫동안 두텁게 드리워져있던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축복해 주는 마음만이 오가는 자리가 되어서 돌아오는 내내도 마음이 따뜻했다.

요즘은 친척의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가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며 우리가 서로 건너온 세월의 강 앞에 시간의 엄정함, 무심함, 위대함을 느낀다. 시간을 뚫고 영원히 남는 원망이나 슬픔은 없다. 어느 지점에서는 그 모든 것이 한낱 부질없는 것으로 날아가며 같이 늙어가는 서로의 현재를 보며 짠한 마음으로 웃게 된다. 너도 나도 오늘까지 살아오느라 애썼구나 ᆢ


길근아 결혼 축하한다. 진심으로.

그동안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 더 많이 행복하게 살아라.

비행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 볼 길근이는 크로아티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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