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kby Stephen
새벽 세시 십오 분.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밤중에 비가 올 수 있다고 예보가 뜨더니만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난 지붕창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10시간여의 거리를 걸어와서 피곤한데도 잠이 깊게 들지 않는다. 어제는 여덟 시간 정도 걷고 기절하듯 잠들었었는데 ᆢ
영국을 걷기 시작하며 줄곧 잘 잤다. 우리나라에선 잠 못 잘까 봐 못 마시던 커피를 두세 잔 마셔도 밤 되면 쓰러져잔다. 거의 매일 8시간에서 10시간 점도를 걷기 때문이다.
걷기 6일째인 오늘은 오래된 교회를 개조한 호스텔에 들었다. 예전에 예배당이었을 공간이 공용 주방이다.
가까운 슈퍼에서 사 온 과일들과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달걀찜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주방 앞쪽에 낡디 낡은 피아노가 있다.
이빨 빠지듯 누렇게 변색된 건반들 속의 거무튀튀한 건반. 음정은 다 흔들리고 누르는 감도 이상한 피아노.
그 위에 놓인 악보, 찬송가를 가만히 쳐봤다.
그래도 페달이 기능을 해서 마치 평생 교회 다니신 구순의 할머니가 찬송하시는 듯한 어조로 선율이 흘러나온다.
내가 모르는 찬송곡과 아는 복음성가 악보다.
피아노가 낡으니 아주 조심히 치게 된다.
크게 치면 흔들리는 음정이 분명하게 들릴까 봐 희미하게 친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음정은 마치 떨리는 할머니 목소리처럼 마음을 울린다.
나는 아주 나이 많으신 할머니들이 부르시는 찬송소리를 좋아한다.
노래인지 말인지 읊조리듯 부르시는 그 어조가 좋다.
교회 다니지 않는 동행 두 사람도 좋아한다.
설거지 할 동안 계속 쳐달랜다.
그제부터 계속 만나던 홀랜드 언니들이 들어선다.
걷던 곳곳에서 잘 드러누워있던 언니들이다.
배낭무게 때문인지 풀밭에도 곧장 잘 드러눕는 모습이 자유롭고 편해 보인다. 오늘 아침도 같은 숙소에서 우리보다 빨리 출발했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고 걷는 언니들이라 더 늦게 도착한 것이다.
오늘은 오는 길에 우리도 풀밭에서 자리 깔고 드러누워있다 왔다.
이런 풍경 속에 어찌 눕지 않으리.
어찌 흘러가는 구름을 보지 않으리.
어찌 저 나무에 깃드는 바람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으리 ᆢ
조용하고 조용하고 조용한 세상이다.
바람과 나무와 풀과 양들과 소떼뿐이다.
아이리시해에서 북해까지 걷는 Coast to coast 여정이다.
레이크 디스트릭의 영화 속에서만 보던 산들을 넘어 이제 이런 초원지대에 들어섰다.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바흐곡이 계속 귀에 맴돈다.
언젠가 포르투갈 오래된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잔 적이 있다. 이상한 두려움에 결국 악몽을 꾸며 잠을 깼었다.
오늘 밤도 그런 느낌이다.
너무 큰 건물은 위압감을 준다. 나는 그런 것에 유별나게 예민하다. 아니, 겁이 많다.
친구들의 숨소리와 작은 코골이, 그리고 이 작은 핸드폰 불빛이 내 두려움을 쫓아준다.
어서 저 지붕창으로 아침빛이 들어오면 좋겠다.
비 오는 날이라 해가 더디 뜨려나. ᆢ
좋아하는 찬송곡 몇 개를 찾아놔야겠다.
아침 먹을 때 또 치게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