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C 완주
오래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오래 걷고 녹초가 돼서 잠들고 뒷날 아침 눈뜨면 또 걸어진다는 게 나도 놀라웠다.
매일 아침의 시작은 항상 싱그러웠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마음의 풍경을 걷는 것이다.
어디선지 읽은 구절이다.
하지만 이번 걷기는 마음의 풍경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속을 걸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가득 물들여진 시간들이었다.
길을 잃을 때 항상 우리를 이끌어 준 것은 beaten path였다.
누군가 먼저 걸어가서 풀들이 납작해진 길.
희미해도 항상 우리 앞엔 그 beaten path가 있었고 때론 지도의 선명한 라인보다 그 희미한 길이 현명하고 정확했다.
여러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길이 되어 또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혼자의 고독과 고립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여기저기 사람이 가득한 도시에서의 이야기다.
무정하고 단호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그저 무리 지어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늘 같은 속도로 갈 수는 없지만 시야에서 동행이 사라지면 순간 공포가 오기도 한다.
내 앞에 내 뒤에 누군가가 있고 나보다 먼저 간 사람의 흔적이 있다는 것은 안심과 더불어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골짜기 농가숙소를 떠나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지름길로 가다가 온통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지도 보느라 발목을 심하게 저찔렀다. 삐었다는 소리다. 갈길은 먼데 눈앞이 캄캄했다. 그날 일정도 산을 몇 개 오르내리는 여정이어 더욱 난감했지만 산중이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스틱에 의지해 걷고 중간중간 약 발라 문질러 가면서 가파른 내리막길도 더듬더듬 왔다.
차가 다니는 길 만났을 때 친구가 차를 이용해서 가자 했지만 고집을 부려 기어이 다시 산을 올랐다
친구가 가져온 스테로이드성분 있는 진통소염제 먹어가며 숙소까지 왔다. 얼마나 안도했던지 ᆢ
하루 자보고 발목 상태보고 대중교통 이용하자고 했는데 뒷날 일어나 보니 발목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여정 무사히 마쳤는데 북해에 다다라 마지막 목적지인 로빈훗 베이에 도착하자 발목이 쑤셔왔다. 부기가 있고 멍이 든 상태다.
St. Bees 아이리시해에서 주워온 돌을 Robin Hood's bay 북해에 던지며 CTC 트레킹을 마쳤다.
발목이 말짱해지지 않겠지만 나는 남은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Whitby라는 아름다운 항구 소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폐허가 된 Whitby Abby
드라큘라의 배경이 된 버려진 수도원
아름다운 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