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마을, 옛 도시들 ᆢ

시르미오네, 코르닐리아, 피사, 루카

by somewhere

베네치아를 떠나 가르다 호숫가에 있는 시르미오네로 가다.

신화 속 여신 이름 같은 도시.

하필 흐리고 비가 와서 을씨년스럽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촬영지라 한다.

걷다 보니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티모시 살라메와 올리버가 자전거 타고 피크닉처럼 나갔던 그 성곽.

신화 속 소년같이 생긴 티모시 살라메가 벽난로 불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생각난다.

덥고 강렬한 열기 속에 커튼을 살랑거리고 들어오던 한줄기 바람, 고요하고 아름답던 그 여름의 혼란스러움도.

이 모든 것을 잉태하던 오래된 중세도시의 겨울은 찬바람만 가득하다.

거리의 가게는 문을 닫은 곳이 많고 간간히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섬의 성곽을 더듬어 간다.

거리에 가끔씩 불을 밝힌 가게가 시르미오네를 밝혀주는 것 같아 보기가 따뜻하다.

동네 위쪽에 아주 오래된 자그마한 교회가 있는데

문이 닫힌 줄 알았는데 슬그머니 밀어보니 열어진다.

멀미 날 정도로 거대한 성당만 보다 이 고요하고 작은 교회를 보니 얼마나 마음이 푸근하고 안도가 되던지.

이런 교회 안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눈감고 기도하게 된다.

마을 전체가 고요해서 말소리도 속삭이게 된다.

영화 속 가방 들고 찾아오던 낯선 올리버처럼 여름엔 사람들이 넘쳐나겠지.

겨울은 사이프러스 나무들과 같이 모두 침묵하고 있다.


시르미오네에 홀려있다가 너무 늦게 출발해서 험준한 산들을 넘어 친퀘테레 쪽 지방으로 넘어갔다.

비 오고 눈이 왔다 도로가 폐쇄되기도 하는 산속을 지나 라 스페치아에 도착.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녁상을 차리고 와인 한잔들 마신다.


친퀘테레 다섯 마을 중 겨울이라 폐쇄된 구간은 뛰어넘고 열린 구간은 산을 넘으며 트레킹 했는데 이구리아해의 푸른 물빛이 곱다.

나는 세 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가 제일 예뻤다.

힘들게 산을 넘어 트래킹 해서 간 곳이라 그런지ᆢ

이 도시들을 시간이 멈춘듯한 도시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누추하고,

누군가에겐 시간이 멈춘듯한 중세의 마을이겠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현재의 시간이 또깍거리며 지나가는 삶의 최전선일 것이다.

잠시 스치는 사람에게는 그 오래됨이 아름답지만 사는 그들에게는 그냥 일상이요 권태일수도 있다.

젊은이는 다 떠나간듯한 마을들ᆢ


과연 희한하게 기울어져있는 사탑, 피사를 거쳐 루카까지.

피사 사탑은 넓은 평지에 펼쳐져 있고 환하게 햇살을 받아 하얗다. 그래서 예쁘다.

올라가는데 몸이 기울어 어지러웠다.

누군가 그런다.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실공사 '

사탑이 바로 서는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사 사람이 끓여주는 커피를 사탑 바로 앞에서 마시고 루카로 향한다.

루카

오페라의 대부격인 풋치니가 태어난 도시, 루카.

루카도 중세도시라고들 한다.

이탈리아는 다 중세에서 멈췄나.

김영하 작가가 말하길 유럽은 오랜만에 와도 변하지 않아 좋다고ᆢ나만 변해 있다고.

몇백 년에 걸쳐 성을 쌓고 탑을 짓는 사람들 속에 잠깐 지나가는 우리다.


이런 도시들을 하루안에 스치고 가는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 도시에서 며칠이라도 자며 그 도시의 주름을 조금이라도 만지고 느껴봤을때 그 도시가 내게 의미가 있다.

여행은 실은 의미없음이 많이 내재되어 있다.

아름다운ᆢ의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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