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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Aug 26. 2023

사람과 사람사이.

브런치를 오랜만에 들어온다.

글은 삶이라고 했는데 내 삶이 글을 쓸만한 모양새가 없었나 보다.

퇴직과 이사로 완벽한 변화를 맞이한 나의 삶은 너무 단조로워서 정말 글 쓸거리가 하나도 없다. 그런 시간들을 살고 있다. 너무나도 사적인 삶. 가족 외에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만날 이도 없는 곳에서 사는 삶.

재미도 있지만 공허하기도 했던 만남들이 없어지니 …웬걸 삶이 텅 빈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혼자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그 넓은 서울 종로 길거리에서 앞에 가는 사람의 등배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더니 정확히 그 사람이 돌아봤다. 설마 했는데 맞았다.

서울서 김서방 만난 격이다. 같이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각자가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기까지 잠시의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30년 된 모임의 지인인지라 서울에서 우리가 만나던 코스에서 우연히 만나진 것이다. 만나면 같이 영화를 봤던 그 영화관에서 따로 다른 영화를 보고 나는 비를 피하여 잠시 건물 내 커피숍에서 머무르다가 나와 걷기 시작했고 그 지인은 동행과 영화 보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 지인의 동행은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느라 꽤 주의 깊게 듣고 관찰한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탐색, 관찰이 주는 호기심과 설렘. 오랜만에 느껴보는 거라 단조로웠던 내 삶에 시원한 물방울이 한 방울 통하고 떨어지며 파장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이런 게 그리웠나.

줄줄이 엮여 있던 모임들을 퇴직하면서 정리하고 싶었다. 자칫 잘못 이야기 꺼냈다가 상처주기 십상인 문제라 에둘러 완곡하게 내비쳐보다가 말았다. 쉽지 않았다. 다들 갈수록 시간은 없고 자주 빠지기도 하고 밥만 먹고 일어서면서도 오랫동안 모여왔다는 그 관성을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임을 만들었을 당시는 공통의 화제가 많았지만 이제 서로의 접점도 엷어지면서 그야말로 의리로 모이는 모임들로 변했다.

간만에 모여 서로의 행색을 살피고 밥 먹으며 근황을 듣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의미가 있다 없다로 모든 것을 재고 있을까?

인간관계에 소극적이고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그런 모임들이 조금 귀찮았다. 용기를 내서 회비를 해체하자고 했던 중학교 친구모임은 말 꺼내는 즉시 거절을 당했는데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회비를 해체하기로 했다고…. 한 친구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 친구에게는 다달이 내는 회비가 힘들 수가 있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가 이야기했을 때는 서운해서 싫다고 했던 총무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바로 회비가 입금되었고 자동이체 해지를 누르는데 마음이 좀 아팠다.

십몇 년 전 한 친구가 집요하게 세명의 친구들을 찾아내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중학교 때 그리 친했나 기억이 감감한데 그 친구들은 우리가 유독 친했다고 한다. 거의 교사들 모임만 있는 내게 그 모임은 좀 달랐다. 한 친구는 목사님 사모님이 되어 있고 두 친구는 이혼녀로 한 명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가장 늦게 찾아낸 한 친구는 조용히 숨어살 듯 고향에 돌아와서 살고 있었다. 그 친구들의 삶은 나와 너무 다른 세계라 공감할 부분들이 적었지만 어릴 적 친구라서 인지 편안함이 있었다.

팬데믹 때부터였나 그 이전부터였나 모임이 뜸해지고 다들 이런저런 사정들이 생겨났다. 혼자 고향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친구는 최근 가벼운 뇌졸중을 앓아 많이 위축되었다. 홀어머니 슬하 가난한 집 딸이었던 그 친구는 엄청난 부자남편을 만나 살다가 이혼을 했다. 실상 부자남편과 결혼한 것은 아무도 몰랐다. 계속 부자였다면 아마 찾아지지도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 친구의 어려움을 핑계로 결국 회비가 해체되었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회비를 모을 때도 잘 만나지 못했는데 이제 더욱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들 언제가 보자 했지만…..


산간벽지에서 자신의 내면만 들여다보며 꼿꼿한 정신을 가다듬는 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가벼운 농지거리 한번 하고 지나는 사람이 그리울 때도 있다.

별로 사람 귀한 줄 몰랐던 나는 뒤늦게 사람 귀한 걸 깨닫는다. 하지만 소모적 관계가 아닌 진솔하게 영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만 맺고 싶다.

가까이 사는 남동생이 저녁에 와서는 새벽 1시 되도록 수다를 떨다 갔다.

공부강박증이 있던 동생이 최근 즐겁게 놀면서 살아도 된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쉰 살이 넘어서도 누나 앞에서 당구 골프이야기 하며 영웅담 늘어놓는 동생이 귀엽고 좋았다.

사람이 매 순간 의미롭게 살기는 힘들다. 가끔 실없는 소리도 하고 그저 수다 떨면서 어젯밤 끓인 국 이야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살이다. 나야말로 의미강박증이 있던 거 아닌가 ᆢ

늦게 철이 든다.

오후 6시가 되어가는 오늘도 나는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여행 중인 딸, 지방에 있는 남편, 주말에만 오는 아들이 아직 오지 않은 토요일.

그래서 이야기를 이렇게 브런치에 문득 나누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는 그저 남이야기 듣기만 할 수 있어 또 편하기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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