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하루에 몇 번씩이 아니라 하루종일이다. 그것은 마치 불치병처럼 나의 머릿속 80프로쯤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로 덮인 듯하다.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무섭도록 집요하게 파고든다. 잠자리에 들 때나, 일어나서 창밖을 볼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하릴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봄날의 따스한 기운에 나른한 졸음을 느끼다가 놀라 깰 때처럼 내가 부정적 기운에서 벗어날 때는 잠깐일 뿐이다.
그러면서 무명작가가 혼신의 마지막 시나리오 한 편을 쓰듯이 고치고 또 고치면서 삶을 언제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구상한다. 어떻게 끝내는 것이 아름다운 이별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항상 내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하지만 삶의 마무리를 내 뜻대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들은 때로 불행을 피할 수 있는 '비상구'이거나, 또는 은밀하게 가지고 있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비상금'인 양 불안하고 초조한 내게 편안한 위안을 주는 '상비약'구실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사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주어지는 모든 것에 순응해야만 했던 환경에서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생각이었다. 나의 경우, 내 삶의 주체는 나이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용기와 희망의 싹은 자라 보지도 못한 채 썩어버렸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살아낼 뿐인 인생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그동안 삶에 대해 수동적이고 무력감만을 느끼며 살았던 것도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그 원인을 또 엄마에게서 찾는다.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무기로 삼던 '수틀리면 죽어버리겠다'며 엄마가 시도하던 일종의 이벤트와 같았던 잦은 사건들은 내 삶까지 불안하고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엄마가 늙고 병들면서 보이던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지나친 삶의 애착은 주변을 고통으로 파괴시킨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온전하게 내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어차피 거스르지 못할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는 거니까. 모든 것은 '내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십여 년 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부정맥'을 진단받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 무심했으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동차 접촉사고로 병원에 갔을 때 타박상보다 그것을 우선 치료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도 마치 노련한 장사꾼이 물건을 팔기 위해 과장해 말하는 것처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것은 아프지도 않았고 단지 가끔씩 살짝 어지럽거나 숨이 차거나 두근거릴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지러움은 심해지고 간혹 정신을 잃는 일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쓰러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얼굴에 상처가 나기도 했고, 음식을 쏟기도 하고, 발목에 골절이 생기기도 했다. 의사가 '돌연사'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최악의 경우 마치 백열등이 낡아 깜박깜박하다가 '탁' 나가버리는 것처럼 될 수도 있다고. 그때 마음속에 환한 빛이 들어오는 듯 한줄기 '희망'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그게 왜 희망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랬다.
오래전부터 구상해오던 시나리오의 마무리 부분으로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결말이 아닌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오던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 가장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아이들은 다 결혼해서 남편으로, 아빠로, 직장인으로 제 몫을 하며 살고 있어서 내가 더 할 일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정리를 시작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청소를 하고, 가스불 단속을 하고, 배달 오는 우유나 신문 따위를 중지시키고 하는 것처럼 통장 비밀번호며 주식계좌며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적었다.
내가 떠난 뒤, 아이들이 내 것들을 정리하면서 '이런 것들은 왜 가지고 있었을까'라든가 '이런 것은 왜 안 쓰고 아꼈을까'라고 할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리는 것에도 집중했다. 이까짓 거 필요하면 다시 사면되지 하면서. 죽음이 성큼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서 은근히 설렜다. 그땐 정말 그랬다.
그러다가 운 나쁘게도 오랜만에 온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쓰러졌다.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은 놀라 반 강제로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고 나는 지금 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 페이스메이커)를 넣는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 내 평생 머릿속으로 구상해 온 시나리오의 자연스러운 완성을 위해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내 깊은 의도를 모르는 아들이 달래듯 말한다. 겁먹지 말라고, 별 거 아니라고,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일상이 불편하니까 하는 간단한 시술일 뿐이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착한 아이처럼 입원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누군가 강력하게 말려주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위선 돋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집요했던 죽음의 유혹은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일까? 이것 또한 운명이니 거스르지 말고 따라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도 생각이 많다. 내게 이제라도 병원에 가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해주는 유혹의 소리도 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면서 또 다른 결말을 선택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내가 보이는 까닭이다.
나는 지금 과도하게 집중된 생각을 멈추어야 할 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