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평생 처음으로 '심장박동기' 시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둘째 낳은 지 얼마 안 된 큰아들에게는 신경 쓰일까 봐 말을 안 했고 작은 아들이 입원날 오겠다는 것은 말렸다. 혼자가도 되니까 네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더니 자식이 꼭 필요할 때만 가는 거냐고 한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작은 아들에게는 이모와 함께 간다고 말하고 동생에게는 작은 애가 온다고 말하는 것으로 아무도 못 오게 하고 혼자 택시를 불러 타고 병원에 갔다. 초겨울 햇살이 등에 따스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나는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아이들에게도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가르쳤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우리는 모두 각자가 자기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인데, 혹은 자식이니까, 또는 그래도 가족인데, 우리가 남도 아니고..라는 '관계'라는 것에 매이지 않는 것, 혹은 매이게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기 독립'이라고 말해왔던 것이다.
독립과 가장 거리가 멀었던 사람은 사실 바로 나였다. 배운 것도, 가진 기술도, 뭔가 해 본 경험도, 독한 실천력이나 배짱도, 돈도 없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대인관계'까지 잘하지 못했다. 전혀 독립적이지 않았고 그런 능력이나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던 때였다. 그저 남편에게 기생해 살면서 이런 날들이 계속될 거라는 보장이라도 약속받은 사람처럼 막연하게 안심하고 살았을 뿐이었다. 굴레처럼 또는 질긴 사슬처럼 벗어던지지 못했던 엄마의 '너는 내 딸이니까'라고 말하며 희생을 강요당했던 '가족관계'에 질려서 입으로만 '진정한 독립'을 말했던 거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모순이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정도로 나는 매사에 무지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남편 덕분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 험한 일을 하지 않고도 사치만 하지 않으면 근근이 먹고 살 정도는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다. 내가 믿을만한 든든한 배경도 없이 그동안 '독립'을 말했지만 '경제적 자립'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의 기반인 것은 분명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나 혼자 해 낼 수 있는 일에 대해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더 늙고 아프기라도 하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 병원에 혼자 오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노력해도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꼭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때 손을 내밀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입원기간은 일주일예정이었다. 간단하게 꼭 필요한 짐만 꾸렸다. 엄마의 잦은 입원으로 짐을 많이 꾸려 본 경험으로 야무지게 챙겼다. 그래봐야 잘 쓰지 않던 작은 여행가방으로 한 개였다. 세면도구, 태블릿과 전화기, 속옷과 충전기, 수건과 물티슈, 미리 주문해 놓은 책 몇 권이 짐의 전부였다. 내가 간 곳은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이어서 어차피 보호자는 필요 없었다. 서울에서 시간 버리며 작은 아들이 왔다고 해 봐야 그까짓 무겁지도 않은 가방이나 들어다 주러 온 꼴이니 못 오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네 명이 쓰는 병실 창가 쪽이었다. 새로 지은 병원이었고 그래서 층고도 높고 공간도 충분했다. 가방의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동안 소아병동과 내과병동의 '코드블루'상황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의 방송이 두 번이나 나왔고 비로소 내가 병원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침대와 침대사이는 핑크빛의 병원로고가 새겨진 커튼이었는데 그까짓 천조각이 뭐라고 심리적으로 내 공간의 분리를 보장받는 듯한 아늑함마저 느꼈다.
저녁밥이 나왔다. 흰밥과 아욱된장국과 장조림, 버섯볶음, 김치와 김이 나왔다. 이렇게 반찬을 여러 개 놓고 밥을 먹기도 오랜만이다. 엄마가 입원했을 때는 밥을 먹지 않아도 그것을 내가 먹지 않고 그대로 내놓았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병원밥이지만 내 몫이라는 생각 차이인지 맛있게 반 넘게 먹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내가 있는 9층 창밖으로 불이 켜지는 밤의 도시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내일 오전에 시술시간이 잡혀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옆 침대에 있는 사람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계속 코를 풀어대는 소리가 더 귀에 거슬렸을 뿐이다.
불도 꺼지고 다들 잠들었는지 병실은 조용해졌다. 환한 복도를 오가는 간호사들의 발자국과 말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창밖의 불빛과 함께 잠들지 못하는 내 밤만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