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일지 2

마음 다스리기

by 경자의 서랍



시술할 시간이 되었다. 폭이 좁은 이동용 침대를 밀며 남자 간호사가 왔다. 나는 시술하기 좋도록 왼쪽 어깨 부분을 단추로 여밀 수 있게 된 소매 없는 상의로 갈아입고 대기 중이었다. 이동용 침대로 옮겨 누운 뒤 5층에 있는 수술실로 갔다. 침대에 누운 채 하얀 천장을 보며 어딘가로 굴러가는 것이 나와 또 다른 내가 분리되어 가고 있는 묘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엘리베이터 천장은 유리 같아서 누워있는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쳐보였다.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수술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드라마에서 보던 수술장면을 떠올렸고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준비과정이 있었다. 긴장감으로 몸이 살짝 떨렸지만 이내 무언가로 덮였다. 얼굴 위로도 뭔가 덮여서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마취가 시작되었다. 국소 마취였다. 그리고 쇄골뼈 바로 아래로 절개가 있었다. 칼로 베는 느낌이 아니라 불로 지지는 느낌이었다. 피가 흐르는지 소독약인지 흐르는 무언가를 계속 닦아냈다. 시술을 앞두고 궁금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 많은 온라인 공간을 헤집고 다녀서 지금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쓸데없는 정보는 공포만 키운다. 이럴 땐 모르는 것이 약일 수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컴퓨터 배경화면이었던 푸른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물소 떼를 떠올리며 지금 상황을 상상하는 것을 멈추기로 노력했다.


여러 상황이 끝나고 시술 마지막이 되었다. 몇 번 묵직한 통증이 있었고 신음소리를 내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스템플러로 상처를 마무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탈칵 탈칵' 일곱 번 소리가 났다. 끝났다. 1시간 40여분 정도가 걸렸다.






의사가 '잘 참으셨고 덕분에 잘 끝났다'는 위로의 말을 하며 누워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다시 병실로 왔다. 지금부터 하루동안은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단다. 대소변도 침대 위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럴 줄 미리 알았으면 시술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손과 발이 멀쩡하고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침대 위에 누운 채 대소변과 식사까지 해결하라니.


아마도 내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심장 내 혈관으로 삽입해 놓은 전극선이 빠질 것을 우려한 주의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밥과 물을 안 먹는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지만 바로 간호사에게 제지를 당했다. 소변을 안 봐도 문제가 되므로 계속 이렇게 되면 소변줄을 꽂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원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무려 15시간 만에 침대 위에 누운 채 간병사의 도움을 받아 소변을 해결했다. 저항할 수 없는 상황과 수치심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밥도 김에 말아 주는 것을 누운 채 아기새처럼 받아먹어야 했다.


왼쪽 팔은 손까지 부어올랐고 뻐근한 통증이 가슴에서 팔 끝까지 있었지만 참을만했다. 내가 참지 못했던 것은 누워있는 동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거였다. 자세도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참으로 고역이었다. 할 수없이 진통제를 맞아야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길고 지루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전극선이 제 자리에 잘 있는 것을 확인하는 엑스레이를 누운 채 찍고 나서 비로소 상체를 일으켜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내려오거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안되었다. 시간은 약이다. 하루가 더 지나 누운 채 엑스레이를 한차례 더 찍고서야 침대 위에서 해방이 되었다. 시술이 끝나고 병실에 온 지 이틀이 지나는 날이었다. 습관처럼 큰 소리로 코를 풀던 옆의 여자는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 앞 침대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이동용 변기를 놓고 볼일을 본다. 속옷을 빨리 올리지 못하는 할머니의 까만 굳은살이 있는 납작하고 힘없이 처진 엉덩이를 원치 않게 보게 된다. 나는 얼른 외면한다. 나의 슬픈 미래를 지금부터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 보기 힘든 까닭이다.


노인이 되면 원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긴다. 눈곱이 끼고, 밥을 먹다 흘리기도 하고, 행동도 느려지고, 말하려는 단어가 생각 안 나기도 하고, 피부는 건조해져서 각질이 생긴다. 침대 위에서 보낸 이틀이란 시간이 내가 더 노인이 되었을 때 일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우울해졌다.


이제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신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삶의 마침표를 '돌연' 마주하는 요행도 이제 기대하지 못한다.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인가?





링거를 걸어 놓은 거치대를 끌고 창가로 갔다. 창문 밖으로 눈이 내렸다. 첫눈이다. 처음에는 눈인지 비인지 모르던 것들이 차츰 눈이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휘몰아 내리는 눈들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선명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은 내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든다.


링거를 걸어놓은 거치대 위 마른 내 손 끝에 빨간 봉숭아 물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에 눈이 갔다. 문득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우울한 밤에 어설프게 늙은 여자 손톱에 남아있는 봉숭아물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내게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할까? 나는 다시 길기만 한 밤을 시작하는 문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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