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원성동에는 ‘원성천’이라는 제법 커다란 하천이 있다. 우리 집은 그 개천 뚝 방에 있었다. 여름 장마로 비가 많이 내리면 하천에는 황토색 물이 넘실대며 흘렀다. 흐르는 물살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물살과 함께 있는 듯 현기증이 났다.
뜯어진 판자나 깨진 플라스틱 조각 같은 쓰레기들이 거센 물살에 함께 떠내려 오기도 했다. 어지럼증을 참고 일렁이며 흐르는 흙탕물을 바라보는 것도 비 오는 날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집과 가까운 곳에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통나무를 엮은 기둥 위에 동그란 구멍이 일정하게 뚫린 철판을 이어 놓은 것이었다. 그 다리는 어른이 건널 때마다 조금씩 출렁거렸다. 처음 그 다리를 건널 때는 뚫려있는 구멍에 발이 빠질까 봐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출렁거림을 즐기면서 뛰어 건너기도 했다.
장마라고 하기에는 이른 때였다. 며칠째 내리던 비는 겨우 그쳤지만, 하늘은 낮은 잿빛으로 흐림을 걷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내린 비로 하천 물은 평소보다 수위가 높았고 물이 조금 잦아들자 뚝 아래 풀들은 군데군데 품었던 쓰레기들을 드러낸 채 한쪽으로 쓸려 누워있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이었다. 날씨가 흐린 만큼 엄마 심기도 흐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으나 꼬투리가 잡히고 말았다. 빨리 학교에 안 가고 늑장을 부린다는 거였다. '게으른 너 따위가 학교는 다녀서 뭐 하느냐고. 그따위로 하려면 학교에 다니지 말라'라고 했다. 그렇게 일상처럼 화를 내던 엄마가 갑자기 마루에 있던 내 책가방을 집어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더니 흙탕물이 넘실대는 개천으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작 그것 때문인가 싶지만 엄마 분노에 이유가 있는 게 이상한 때였다.
들고 다니는 손잡이가 있는 빨간색 가방이었다. 내가 못마땅할 때마다 책가방을 불 싸질러 버린다든지 찢어 버린다는 말을 자주 했던 엄마는 그날 내 가방을 기어코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개천 둑에 자라던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사이로 던진 내 빨간 가방에서 책들이 빠져나와 허공에 흩날렸다. 그러더니 넘실대며 흐르는 흙탕물 소용돌이 속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내 빨간색 책가방은 잠깐 물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가 영영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정지된 영화 속 한 장면이거나, 만화의 한 컷처럼 쓸데없이 또렷하게 그날이 떠오른다.
여러 날 비가 오다 그친 습기 많던 그날 아침,
평소보다 높은 수위로 넘실대던 흙탕물,
물기 가득하던 아카시아 잎의 진한 초록색,
그리고 한번 불쑥 솟구쳐 올랐던 빨간 가방의 사각 모서리까지..
책가방을 집어던지는 엄마를 울며 따라 나왔던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눈물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눈물 가득 찬 눈에 둥근 어항 속 세상처럼 굴곡진 풍경이 보였다. 지금도 '안돼요!'라는 짧은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어리고 무력한 내가 선명하다.
그렇게 책과 가방이 송두리째 사라진 나는 며칠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다음날, 아버지가 가방은 새로 사 왔지만 없어진 교과서는 빨리 준비되지 못했다. 언니나 오빠 책을 물려받아 쓰던 때였고, 지금처럼 쉽게 인터넷이나 책방에서 책을 구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며칠을 이리저리 알아보던 아버지가 헌 책방과 고물상에서 누군가 오래 써서 낡은 몇 과목 책들을 구해 왔다. 그중에 ‘국어’ 교과서는 얼마나 험하게 썼는지 찢어진 낡은 표지는 누런 얼룩 자국에 낙서로 엉망이었다. 게다가 한자까지 겸용으로 쓰는 오래된 것이었다. 나는 낡은 헌 교과서를 학교에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도, 이렇게 된 자초지종을 아이들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도 부담스러웠다.
학교에 가지 못한 며칠이 지나고, 어색한 새 가방에 헌 책을 넣고 학교에 가던 날, 아버지는 편지 한 통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육성회비가 밀렸을 때 선생님께 드리라며 써 주던 편지처럼, 내가 며칠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를 어린 마음에도 짐작이 가는 구차한 내용으로 적었을 터였다. 걸어가는 동안 친구들이 학교에 안 온 이유를 물으면 어떻게 이야기를 꾸며낼까 나름 궁리를 많이 했는데 물어보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왕따’였다. 학교에 갈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 함께 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늘 혼자였다.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름이 기억나는 친구 하나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우리 집의 ‘구박데기’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가장 감추고 싶었던 내게 친구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엄마와 함께 길에서 학교 친구라도 만나면, 이 사람이 우리 엄마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일부러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걸었다. 손 한번 잡아주지 않던 엄마였는데 나는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