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덕을 보고 살까?

아줌마들의 우물가 수다

by 경자의 서랍


우물가 이야기




오룡동에 살 때 우리 집은 대문을 열면 오른쪽으로 수돗가가 있었고, 그곳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지름이 1미터도 넘을 만큼 컸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었다는 우리 집 우물은 동네 우물이 다 말라도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 집 근처에 생긴 얼음공장에서 지하수를 기계로 뽑아 올려 얼음을 얼리면서 다른 집 우물들처럼 말라버렸고 수도가 놓인 뒤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우물 위에는 나무로 만든 덮개가 있었다. 원형의 덮개는 중간에 경첩을 달아서 열면 반으로 접혔다. 내려다보면 어른 키 두배는 족히 돼 보일 만큼 깊었다. 우물 안에 물은 없었지만 바닥의 돌들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한 우물이었지만 여름이면 요긴한 김치냉장고 역할을 했다.


손잡이가 달린 통에 김치를 담아 줄에 매달아 우물 아래로 내린 뒤 줄을 우물 덮개의 못에 묶어 놓으면, 깊은 우물 속에 있는 통 속 김치는 오랫동안 시어지지 않은 채 차게 보관되곤 했다. 우물 속에는 색깔이 다른 크고 작은 여러 집의 김치 통이 여름이면 서너 개씩 들어있었다. 실수로 김치 통을 연결해 놓은 줄이 아래로 떨어지면 김치 통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을 주우러 누군가가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와야 했다. 해마다 여름이면 두어 번씩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 집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자주 모였다. 우물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화제가 되기 일쑤였다.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쟤 좀 봐. 우리 경자 좀 보라구, 쟤 걸음걸이는 누굴 닮았는지.. 자, 나 좀 봐봐. 쟤는 이렇게 이렇게 걷는다니까... 히힛~ 똑 가랑이에 밤송이라도 낀 것 마냥 어기적 어기적 이래 이래 걷는다구.. 저래두 시집은 가겄지. 어떤 놈 하나 신세 조져놓을라구...”


엄마는 웃옷을 올려 잡고 엉덩이를 과하게 뒤로 빼고 흔들면서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내가 그렇게 걷는다며 흉내 내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다 같이 웃었다.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아주머니들이 재미있어하며 웃음소리가 커지면 엄마의 목소리는 따라서 커졌고 행동은 더욱 과장되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엄마의 내 흉보기는 끝도 없었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놀러 와 있는 날이면 오줌이 마려워도 참았다. 화장실을 가려면 우물이 있는 마당을 지나쳐야 하는 까닭이었다. 어느 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순옥이 엄마가 말했다.


“경자 엄마, 그만해~ 그러다 늙어서 경자 덕 볼지도 모르잖어~ 사람일이란 알 수 없으니께~”


“아나~ 내가 혀를 깨물고 죽으믄 죽었지 쟤 덕을 보고 살까~”


엄마는 깔깔 소리 내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누가 앞날을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때 자신 있게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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