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을 운동회 속으로..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다.

by 경자의 서랍



사진 속 기억하나




오래된 한 장의 사진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 역사의 사료 역할을 한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오래된 초등학교 시절 중 가을 운동회 때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를 마치고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찍었다. 나는 고전무용인 부채춤을 막 끝냈고 세 살 터울 동생은 달리기를 마친 다음이었다.

동생 옷은 여름 체육복으로 모자는 노란색, 상의는 흰색으로 가슴에 학교 마크가 찍혀있었고 반바지는 초록색이다. 내가 입고 있는 한복은 빨간색에 옷고름과 밑단이 노란색이다.


고학년이었던 나는 고전무용인 부채춤을 추어야 했다. 대부분 운동회는 추석을 전후로 했지만 연습은 더위가 물러가지도 않은 여름 끝자락부터 시작했다. 부채춤을 추려면 한복이며 족두리, 그리고 부채와 같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엄마는 돈이 없어 한복을 못해준다고 했다. 운동회를 포기한 나는 연습에 끼지 안았다. 그러다 갑자기 운동회를 며칠 앞두고 한복을 해 주었다. 연습을 못해 순서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나는 안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없는 돈에 한복까지 해 주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다그쳤다. 부채춤 순서에 자신이 없던 나는 맨 뒤에서 다른 아이들 하는 것을 보며 눈치껏 동작을 따라 했다. 사진은 그렇게 맞춘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었던 운동회 날 찍었다. 못생긴 얼굴이 밝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뒤 쪽 화단의 꽃은 연한 보라색 구절초다. 크레파스를 사면 제일 먼저 보라색이 닳아 없어지곤 했던 내가 지금도 쓸데없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색깔의 꽃이다.


오래된 운동회 속으로



추석 즈음에 하는 운동회는 소풍과 함께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였고 석회가루로 유난히 희고 또렷하게 트랙 선이 그어져 있었다. 운동장 뒤 쪽으로는 사나운 수탉의 볏과 닮은 맨드라미며 핏빛처럼 붉은 칸나가 피어 있었고 미끄럼틀과 철봉에는 내 손가락만큼 커다랗게 살찐 송충이들이 기어 다녔다.

일찍부터 운동장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커다란 함지박에 삶은 햇밤을 실에 꿰어 담아 온 사람, 찐 고구마를 팔려고 가져온 사람, 떫은 감을 우려서 한가득 싣고 온 리어카도 있었다. 달콤하게 살살 녹는 솜사탕 장수와 엿장수도 빠지지 않았다. 학교 앞 문구점도 북적거리며 아이들로 넘쳐났고 사각형 얼음통을 한쪽 어깨에 둘러멘 ‘아이스케키’ 장수도 아이들 사이를 바삐 오갔다.





저 학년들은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허리에 매단 풍선 터트리기나 무용을 했다. 고학년 남자들은 기마전이나 곤봉체조를 했다. 곤봉 끝에 색깔이 있는 비닐끈을 매달아 절도 있게 곤봉을 흔들고 돌릴 때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비닐끈은 곤봉체조를 더 멋있어 보이게 했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함께 달리기'였다. 그것은 뛰는 중간에 바닥에 있는 종이를 주워 그 종이에 쓰여있는 사람을 찾아 함께 달리는 것이다. 종이에는 '선생님' '군인 아저씨' '아주머니' 등과 같이 다양한 인물이 쓰여있었다. 군인 아저씨를 뽑은 아이가 늘 1등을 했다. 힘이 좋은 군인은 아이 손을 잡고 아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거의 들다시피 하고 뛰었다. 아주머니를 뽑은 아이가 꼴찌를 예감했는지 훌쩍이며 우는 일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함께 달리기'를 해 본 적 없지만 구경만은 재미있었다.


여럿이 하는 '줄다리기'도 내 발에 절로 힘이 들어가게 아슬아슬했지만 마지막 즈음에 하는 청군과 백군의 계주는 구경 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게 했다. 선수가 뛰다가 넘어지거나 바통이라도 놓치는 경우에는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런 안타까운 실수로, 승부는 엎치락뒤치락거리며 긴장감을 더 했다.


학년 달리기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손등에 번호를 찍어 주었다. 나는 공책이라도 한 권 받을 수 있는 3등 이내로 들어와 본 적이 없다. 잘 뛰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나는 잘 뛰려는 의욕 자체가 없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키만 멀대같이 컸지, 저 어기적거리며 뛰는 꼴이라니~, 혼자 보기 아깝다니께~"





어느 핸가 운동회 날 간식 사 먹으라고 준 용돈을 몽땅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여름 체육복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운동회 전 날 엄마는 바지 안 쪽에 천을 대고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곳에 용돈을 넣었는데 학년 달리기를 하고 난 뒤 솜사탕을 사러 갔을 때 돈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모래가 깔린 운동장에서 잃어버린 돈을 찾기란 바늘 찾기와 비슷한 일이었다. 얼마인지 기억에 없지만 평소 변변하게 용돈을 받은 적이 없다가 운동회라고 특별하게 받은 돈이었다. 그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나는 눈물이 날 만큼 허망했다.


집에 돌아와 잃어버린 돈 이야기를 하자 ‘너 하는 게 항상 그렇지~’라는 책망의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다음 해 운동회부터 엄마는 돈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속주머니 입구에 옷핀을 꽃아 주었다. 그 후로 바지를 들추고 옷핀을 빼고 돈을 꺼내는 모습이 시골 할머니 같아서 부끄럽긴 했지만 돈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기다리던 시간 중 역시 최고는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 전에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박 터트리기를 한다. 커다란 소쿠리 두 개를 붙여서 종이를 바르고 긴 장대에 그것을 매단 다음에 헝겊 주머니에 콩이나 모래를 넣어 만든 '오자미'(우리는 '오재미'라고 불렀다.)를 던져 소쿠리를 반으로 가른다. 그러면 벌어진 소쿠리 안에서 온갖 색깔의 색종이가 허공에 흩뿌려지며 '지금부터 점심시간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 펄럭이며 나타났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고 그때부터 즐겁고 행복한 점심시간이 되는 것이다.


학교 담장을 둘러싸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는 일찌감치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은 엄마들이 평소와 다르게 장만한 음식을 펼쳐놓고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밥이나 불고기, 삶은 달걀과 사이다는 정말 부러웠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엄마는 한 번도 학교로 점심을 싸가지고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집에 가서 평소와 같은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왔다. 그 대신 넣어 준 것이 체육복 주머니 속의 용돈이었던 것이다.






나는 맛있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도 엄마가 싸 온 음식을 운동회 날 다른 친구들처럼 먹고 싶었다. 그런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초등학교와 아파트가 담장 하나를 경계에 두고 '엎어지면 코 닿는'거리에 있어도 운동회 날은 꼭 밥을 싸가지고 갔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책 읽는 소녀상' 뒤 쪽이라던가 '2학년 교실 화단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시끄럽고 먼지 날리고 주변은 어수선해도 아이들은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 체조가 끝나면 달려오고, 달리기를 한 뒤에 손등에 찍힌 숫자를 자랑하러 오고, 친구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체육복 바지 안쪽에 시골 할머니 속바지 주머니 같은 것을 만들어 옷핀을 꽂아주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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