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걸까? 잊은 척하는 걸까?

6학년 겨울방학에..

by 경자의 서랍


화상(火傷)의 상처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마무리할 때쯤이었다. 방문도 열지 않은 채 부엌 쪽을 향해 엄마가 말했다.


“경자야, 연탄불까지 갈구 들어와라~”


안방을 향해 있는 연탄아궁이 위에는 겨울이면 항상 커다란 물솥이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데워진 물을 퍼서 설거지도 하고. 아침이면 세수도 했다. 솥 안은 끓기 직전 뜨거운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퍼서 쓴만큼 가득 채우는 것도 내 일이었다. 나는 한 발을 시멘트를 바른 부뚜막에 올리고 행주를 이용해 겨우 뜨겁고 커다란 솥을 들어냈다. 그리고 연탄불 화력이 방 구들로 향하도록 만들어진 '두꺼비 집'이라고 불리던 것을 집게로 들어냈다. 그 순간이었다.


좁은 부뚜막 넓이를 감당 못하고 커다란 솥이 내 쪽으로 넘어지며 뜨거운 물을 쏟아냈다. 두툼한 겨울 양말을 신은 발등이 뜨거운 물로 흠뻑 적셔졌다. 나는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 옆에 있던 설거지통에 양말을 신은 채 발을 집어넣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부엌으로 통한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부엌은 뜨거운 물이 쏟아지며 만들어 낸 수증기가 새벽안개 처럼 자욱했다.


“아주 갖은 풍악이다~”


문을 열어 난장판이 된 부엌과, 혼날까 봐 이미 주눅이 든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난 뒤 엄마가 한 첫마디였다. 그리고는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았다.


아버지가 나오셨다. 나의 젖어있는 두꺼운 양말을 벗기고 발 상태를 살폈다. 상태가 심했던 왼쪽 발등은 빨갛게 익어있었고 양말을 벗기면서 피부 껍데기가 한쪽으로 밀려났다.


“이 정도길 다행이구먼. 물솥이 아궁이 쪽으로 쏟아졌으믄 수증기가 니 얼굴로 가서 큰 일 날 뻔했다, 여기는 아부지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방으로 들어가거라. “


방으로 들어오고 난 뒤 내 발등은, 마치 상처에 고춧가루라도 뿌려 놓은 듯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섭고, 아프고, 서러웠다. 화상에 바를만한 변변한 약이 있을 리 없었다. 아버지가 소주를 한 병 사들고 왔다. 대야에 소주를 붓고 거기에 발을 담갔다. 아버지는 내 빨개진 발등에 소주를 손으로 퍼서 씻듯이 흘려주었다. 그러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울었다. 소리는 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지만, 콧물이 계속 흘러 훌쩍거렸다. 엄마는 두 무릎을 양손으로 감싸 쥔 채 내게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경자야~!! 듣기 싫으니께 훌쩍거리지 마라. 생각해봐라~ 발이 디어서 그런디, 니가 운다고 그 발이 낫것냐? 아픈 게 안 아퍼지것냐? 우나 안 우나 아무 상관없으니께 듣기 싫게 울지 말 란말여~!"


엄마는 그 후로, 내 발등 화상이 아물어 딱지가 앉도록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 경자야~ 내 여기 좀 한 번 볼래? 느덜은 이게 얼마나 아픈지 모를 거여~ "


엄마를 보러 간 어느 날, 내가 앉자마자 엄마는 일어나 뒤돌아서더니 바지를 훌렁 내린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내게 둘러대고는 '요기, 요기를 보 란말여~'라고 하면서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가리키는 거다. 평소에 하지 않던 엄마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


"가끔 엄마가 이상해, 계절두 모르는지 옷두 이상하게 입구~ 시간 개념두 없는지 퇴근해서 씻구 나오니까, 나보구 지금 몇 신데 출근 안 하냐구 하더라구~"


얼마 전 동생이 이런 말을 할 때도 흘려듣기만 했는데, 이게 혹시 치매 증세는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별일 아니었다. 엄마는 단순히 치질이 생겼을 뿐이고, 그것을 내게 보라고 엉덩이를 들이민 것이었다. 수줍게 나와있는 작은 물혹은 내가 둘째 낳고 생겼던 치질 물혹의 반쯤보다 작았다.






천식을 앓고 있는 엄마는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앉아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누우면 숨 쉬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그렇게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앉아서 밥을 먹고, 밤에도 앉아서 자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끝내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다. 병원에 입원해서 욕창치료를 받는 중에도 침대에 앉아서 밥을 먹고 앉아서 잤다.


"느덜은 안 겪어봐서 모르는겨~ 이렇게 해야 편하다니께 그러네~ 그나저나 엉덩이는 왜 이리 아프다니?"


의사나 간호사, 자식 말도 무시하면서 엉덩이는 아프다고 투정을 부린다. 말이 많던 엄마는 나이 들면서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버릇이 하나 늘었다.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고 그것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욕창이 있던 자리는 거뭇하게 흉터를 남기고 아물어 갔다. 하루에 한 번씩 소독을 하고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하라는 주의를 들으며 엄마는 퇴원을 했다.


그 후로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갈 때면 '엉덩이 소독 좀 하구 가라'라고 말하며 바지를 내리고 내게 엉덩이를 들이민다. 난감하다. 해주겠다는 동생을 놔두고 내게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가없다. 나는 엄마 엉덩이를 애틋한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며 살뜰하게 연고를 발라줄 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까닭이다. 어릴 적 아파서 열이 펄펄 나도 이마 한 번을 짚어주지 않던 엄마였다. 그때 했던 엄마 말대로 내가 엉덩이를 소독한다고 해서, 또는 들여다본다고 해서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어린 딸에게 '운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 듣기 싫게 울지 말라'라고 차갑게 말했던 엄마는 옛날 기억을 잊은 건지, 잊은 척하는 건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왼쪽 발등 화상 흉터는 그날의 기억만큼이나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미지 출처: 오마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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