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버린다는 엄마의 협박
“내가 죽어야 이 꼴 저 꼴 안 보지~ 간다 간다 하믄 가는 거구 죽는다 죽는다 하믄 죽는 거여~”
화가 날 때마다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어린 나에게 이 말은 심각한 의미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원성동 집에는 연탄을 쌓아 놓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대신 넓은 부엌 한쪽에 연탄을 쌓았다. 연탄이 한 장 두 장 줄어들 때마다 벽에는 연탄이 닿았던 흔적이 거뭇하게 드러났다.
드러난 것은 흔적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신문지와 비닐로 꽁꽁 싸맨 채 놓여있는 정체모를 작은 물건이 하나 발견되었다. 몇 겹이나 꼼꼼하게 싸 놓은 포장을 벗겨내자 드러난 것은 갈색의 작은 병이었다. 몇 장 안 남은 연탄을 치우고 새로 연탄을 들이는 날이었다. 그 병 주인은 엄마였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농약이 들어있었다.
‘수틀리면’ 마시고 죽어버린다며 사다가 감춰 놓은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아버지는 농약병 쥔 손을 바르르 떨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엄마는 태연하게 아버지로부터 그 병을 빼앗더니 새 연탄이 천장까지 쌓인 뒤편에 아무렇지 않게 찔러 넣었다.
“당신이 그걸 갖다 버린다고 내가 못 죽을 것 같어유~ 얼마든지 갖다 버려두 까짓 꺼 나가서 다시 사 오믄 되는거구~ 죽을라는 맘이 중요한 것이지, 그까짓 약이 중요한 게 아니니께~”
그 후로 아버지는 오랫동안 엄마가 안 보이면 제일 먼저 쌓아놓은 연탄 뒤편에 공공연하게 감춰진 농약병의 유무를 확인했다. 엄마의 협박 때문인지 그것이 그대로 있음에 안도하면서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농약쯤은 마셔버리고도 남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다. 니가 몰라서 그려~ 니 엄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여간 독해야지~ 그래두 엄마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불쌍한 사람이다~ 남편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만 하구 산 사람이여~ 그러니 엄마한테 잘해라~ 쓸데없는 말 하지 말구~”
나중에는 연탄을 새로 들일 때마다 누구라도 먼저 비닐에 쌓인 농약병을 보면 한쪽으로 치워놨다가 연탄을 다 쌓고 나면, 엄마가 하듯이 슬그머니 연탄 뒤쪽으로 밀어 넣어 두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평생을 엄마의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려 살면서도 항상 엄마 편을 들었다.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도 늙어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를 한결같이 감싸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랬던 아버지를 돌아가신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욕하고 있는 엄마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