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있으니까 목욕탕에 가는 거 아녀?

어릴 적 목욕탕의 추억

by 경자의 서랍


대중목욕탕의 추억




겨울이면 가끔 대중목욕탕에 갔다. 여탕을 이용할 수 있는 엄마와 나와 여동생이 함께였다. 날이 추워지면 우리는 잘 씻지 않았다. 양은 세숫대야에 손이 쩍쩍 들러붙는 겨울 추위 속에서 데워놓은 물 한 바가지로 겨우 눈곱이나 뗄 뿐이었다.

날이 더 추워지면 내복을 입었다. 시장에서 사 온 것도 있었지만 엄마가 털실로 속바지를 짜 주기도 했다. 털실로 짠 내복은 제일 먼저 무릎에 구멍이 났다. 구멍이 커지면 엄마는 그것을 다시 풀었다. 그리고 풀어낸 털실을 가지고 대바늘을 이용해 다시 내복을 짰다. 그러면 구멍이 났던 부분만큼 실 길이가 줄어들어 오빠 내복이 내 것이 되었다. 그러고도 남은 자투리 실은 모아서 양말을 짰다. 우리들 양말 색은 항상 알록달록했다.

목욕탕에 갈 무렵이 되면 무릎에 까맣게 때가 끼었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뒤꿈치 부분에는 항상 거뭇한 때가 있었다. 나는 목욕탕에 가기 전날이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 놓고 발과 무릎의 때를 닦았다. 혹시라도 목욕탕에 온 친구에게 더러운 모습을 들킬까 봐 부끄러웠다.


“가지가지한다. 아니, 때가 있으니께 딲으러 목욕탕에 가는 거 아녀? 때가 없으믄 돈 내고 목욕탕에 뭣하러 간다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읍는 것이 때 있어서 창피한 건 어찌 안다니~ 창피스러운 걸 아는 것이 어째서 다른 거는 야물딱지게 못하는지 참으로 알 수가 읍다. 사람은 한결같어야 하는디 말여~ 으응~”





목욕탕은 가까웠다. 우리는 목욕 갈 때만 사용하는 플라스틱 전용 대야에 비누와 수건, 그리고 목욕 후에 갈아입을 옷을 가득 담아 가져 갔다. 목욕탕 입구는 영화관 매표소처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으로 사람 수만큼 돈을 내고 옷장 열쇠를 받아 들어가면 넓은 마루와 나무로 짠 옷장이 나란히 있었다. 한쪽에는 올라서서 몸무게를 달아볼 수 있는 눈금이 그려진 커다란 저울도 있었다. 주말이면 손님이 많았고 옷장 개수가 모자라면 플라스틱으로 된 사각형 바구니를 주는 날도 있었다. 엄마 옷은 옷장에 넣고 우리들 옷은 바구니에 담아 포개서 한쪽에 쌓아 놓았다.

옷을 벗어 바구니에 담을 때에는 행동을 빨리했다. 보이기 싫은 낡은 속옷과 남아있는 발뒤꿈치와 무릎 때를 누가볼까 싶었기 때문이다. 많이 예민하고 부끄러운 것도 많던 사춘기였다.

하늘색 작은 네모 타일을 붙인 목욕탕 안은 창문이 높은 곳에 작게 뚫려있었다. 그래서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뽀얀 수증기는, 처음 영화관에 들어가면 어둠 속에서 사방을 분간할 수 없듯이, 한동안 눈앞의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도록 자욱했다. 우리는 커다란 탕 옆에 자리를 잡고, 작고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자주색 작은 대야로 물을 퍼서 씻었다.

비누칠이 끝나면 때를 불려야 한다며 엄마는 뜨거운 물이 가득한 탕 안으로 우리를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와 콧등에는 송글 송글 땀이 맺힌다. 이제 나가도 되느냐는 몇 번의 같은 물음 끝에 겨우 뜨거운 탕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때부터 빨간색 때타월로 엄마는 우리 몸의 때를 사정없이 벗기기 시작한다. 목욕탕 여기저기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데려온 아이들을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무리하게 닦이는 엄마들이 많던 까닭이다. 벌겋게 때를 밀어낸 자리에 끼얹는 물은 왜 그리 뜨겁게 느껴졌는지.

“경자 쟤는 목욕 다녀온 티가 저렇게 안 난다니? 목욕 가서 때를 벗기고 오믄 뭔 티가 나야지. 경미는 볼이 발그레하니 머리카락에서는 윤이 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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