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살이니? 혼자 왔니?

혼자 갔던 초등학교 입학식

by 경자의 서랍




아버지는 평범했지만 자상했다. 술도 담배도 안 했고 엄마에게 험한 말 한 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느이 아버지는 착하기만 하고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식들에게 ‘내가 씨 받아서는 안 될 종자 씨를 받았다’는 말도 자주 했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삼 남매가 지금까지 평범하고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반쯤의 천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는 글과 숫자를 가르쳤다. 갱지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검은색 두꺼운 표지 앞뒤를 철끈으로 묶어 연습장도 직접 만들었다. 실을 잡아 다닌 다음 종이를 돌돌 돌려서 까던 다이아몬드 표 색연필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글자 간격을 맞출 수 있도록 일일이 자를 대고 칸도 그렸다. 내가 똑바로 따라 쓸 수 있도록 정성스럽고 반듯한 글씨로 내 이름과 숫자를 맨 위에 써 주었다.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과 숫자를 쓰고 읽을 줄 알았다. 천안으로 이사를 온 다음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때부터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직업군인 신분을 정리하고 일자리를 찾아 천안에 왔는데 그 회사가 몇 개월 후에 부도가 나면서 아버지가 실업자가 된 것이다.

“내가 그때 고생한 거는 말루 다 못해. 쟤덜 아부지 먼 친척에게 군인일 때 번 돈 다 사기당하구 빈손으루 내려왔는디 직장이라구 믿구 온 것이 그리 돼버렸으니... 수중에 뭔 돈이 있었것어? 그렇다구 쟤덜 아부지가 어디 가서 천 원짜리 하나 융통 해올 줄도 모르는 주변머리니~ 경자가 학교에 입학을 하는디 새 옷 한 벌 사줄 돈이 읍었다니께. 그래서 시집올 때 해 온 재봉틀을 이고 가서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지. 저기 저 그림이 내가 그 재봉틀 팔고 하두 서운해서 재봉틀 대신 사 온 액자여~ 그러니께 저 액자가 내 재봉틀이나 마찬가진겨~ 그 돈 갖구 시장으루 쟤 옷을 사러 갔는디 뭔 옷이 그리 비싼지,, 시장을 몇 바퀴 돌다가 맘에는 안 들지만 젤 싼 걸루다가 사 갖구 왔지”



남들 앞에서 말은 저렇게 했지만 엄마는 내 입학식에 가지 않았다. 딸이지만 내가 너무 못생겼고 입학식에 입고 갈 변변한 자신의 옷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키는 컸지만 나는 여덟 살 일 뿐이었다. 입학식에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두려웠다. 학교도 제법 멀었다. 넓은 운동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온 가족이 입학식에 온 집도 있었으리라.


입학하던 해가 68년도였다. 한글을 모르고 입학한 애들이 대부분이어서 반과 선생님을 알려주는 것은 글씨가 아니라 색깔이었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반 별로 가슴에 노랑. 빨강. 파랑. 보라와 같은 색깔 리본을 옷핀으로 달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것과 똑같은 색 리본을 아이들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 달았다. 그러니까 자기 가슴에 달린 리본 색깔과 같은 색 리본을 달고 있는 분이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운동장 연단에서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는 선생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긴장하며 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나와 같은 색 리본을 달고 있는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키가 컸으므로 제일 뒤쪽으로 보내졌다. 어떤 엄마가 내게 물었다.

“너 몇 살이니? 혼자 왔니?”


그때만 해도 늦은 나이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드물지 않았고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크기도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이 시작되었다. 나는 주목받는 아이가 아니었다. 한글을 다 읽고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한 초등학교 생활은 이어졌다.




엄마가 입학식 때 입히려고 재봉틀을 전당포에 맡긴 돈으로 사준 웃옷은 검정 바탕에 빨간색 체크무늬가 있었고, 안에 솜을 넣어 누빈 것이었다. 오래 입히려는 마음에 옷은 커서 구럭 같았지만, 그동안 오빠 옷을 물려 입던 나는 처음으로 내 몫의 새 옷이 생겨 잠이 안 올만큼 좋았다.

재봉틀 대신 사 왔다는 액자는 곱슬머리 예쁜 소녀가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빛이 들어오는 곳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재봉틀은 끝내 다시 찾아오지 못했고 그 액자는 오래도록 이사를 갈 때마다 안방 벽 높은 곳을 차지하고 걸려있었다.

keyword
이전 07화너 하나 죽는다구 눈 하나 깜짝할 줄 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