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기 싫으믄 굶어 죽어야지~
오래된 기억 하나
오룡동 할머니네 집에 세 들어 살던, 아홉 살 무렵의 기억이다.
아침부터 엄마 심기가 불편했는지 잔소리와 함께 밥상을 차리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밥상이 들어오면 냉큼 와서 밥을 먹어야 할 거 아녀? 밥 먹기 싫으냐? 그러믄 먹지 마라. 나두 밥 먹기 싫다는 애 밥해주기 싫으니께~ 지 입으루 밥 들어가는 것두 먹어라~먹어라~ 그래야 먹는다니~ 밥 안 먹으믄 니 배고프지 내 배 고픈 거 아니니께~”
그렇게 아침을 굶었다. 점심때가 되자 나는 얼른 밥상 앞으로 다가갔다. 배도 고팠지만 아침에 혼난 게 생각났다. 그런 내게 엄마가 말했다.
“너는 밥 먹기 싫댔으니께 점심두 먹지 마라~”
누구보다 먼저 밥상 앞에 앉았던 나는 엄마 말에 머쓱해졌고 밥상에서 떨어져 앉았다. 그렇게 점심밥을 먹지 못했다. 저녁에도 그랬다. 배가 몹시 고팠으나 밥상 앞으로 가지 못했다. 엄마의 한마디 말로 나는 저녁까지 굶었다. 방 안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누웠다. 배도 고프고 서러운 마음에 소리 죽여 울었다. 밤이 깊었지만 나는 배고픔에 잠들지 못했다.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밥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소리가 나면 엄마가 깰 것 같았다. 그때 석유곤로 위에 있는 노란색 양은 냄비가 눈에 띄었다. 거기엔 저녁에 먹다 남은, 차게 식은 된장찌개가 남아 있었다. 나는 된장찌개 속 건더기들을 손으로 건져 먹었다. 그리고 살금살금 다시 들어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잠이 깼다.
“ 된장찌개 건더기는 누가 이렇게 홀랑 건져 먹었다니? 밥 먹기 싫으믄 굶어서 죽어야지, 배고픈 건 못 참아서 이걸 건져 먹었다니~ 아주 굶어 죽지 그런데? 너 하나 죽는다구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안다니? 오늘두 먹지 말구 굶어라~ 하루 이틀 굶는다구 죽는 거 아니다. 굶어 죽을래믄 오래 굶어야 하는겨~그래야 죽는겨~”
밤에 된장찌개 건더기를 먹은 것을 엄마가 알았다.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혼날 것이 두려워 잠에서 깼지만 자는 척하며 누워있었다. 그렇게 점심때가 지났다. 비몽사몽인 중에도 밥과 반찬 냄새가 났다. 베개도 없이 누워있던 내 눈에 밥을 먹는 식구들의 발과, 나무로 된 상다리가 보였다. 나는 점점 기운이 없고 나른해졌다. 옆으로 돌아눕거나 뒤척일 때마다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하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핏 눈을 뜨면 분홍색 무늬가 찍힌 방안의 벽지가 눈앞에 아득하게 아른거렸다.
기억은, 드라마를 녹화한 것처럼 그대로 돌려 볼 수 없다. 시간이 오래 흐른 만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 머릿속에서 왜곡되거나 편집되어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내 불행한 어릴 적 기억은, 연극무대 위 주인공에게만 비치는 스포트라이트처럼, 몇 개 잃어버려 완성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소파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떠오른다. 그렇게 온전하지 않게 내가 집중한 부분만 선명하게 파편적(破片的)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내가 굶고 있을 때 아버지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엄마와 같은 생각으로 나를 방치한 걸까? 허기져 누워있는 어린 딸을 옆에 두고 밥을 먹고 있었을까? 내가 본 것은 밥을 먹는 식구들 발과 상다리뿐이었지만, 그중에 아버지도 있었던 걸까? '당신 애한테 무슨 짓이냐'라고 엄마를 말리지는 못했을까? 아버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무엇도 내게 해주지 못했을까?기억의 퍼즐이 가끔 맞지 않거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때에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빗장이 있던 나무 대문, 항상 정갈했던 재래식 화장실, 그 바깥쪽 벽을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덩굴, 집주인 할머니가 키우던 마당 한 구석 철망 속 서너 마리 닭들, 장독대 근처에 피어 있던 채송화와 백일홍, 일요일이면 성경책이 든 가방을 들고 성당에 가던 할머니, 닭에게 줄 배춧잎을 주우러 시장에 가던 일, 할머니네 대청에 있던, 문이 많이 달린 오래된 고가구 서랍장까지 다 기억나지만, 그런 날 기억에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나만 보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경자야, 네게 정말 미안하다. 다 못난 아버지 탓이다. 너한테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게 할 말이 없어야 하는 사람은 엄마다. 엄마는 식구들 속에서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지긋지긋한 잔소리와 독한 악담도 엄마 짓이다. 엄마라는 자리가 서툴고 힘겨웠어도 자식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에구~ 경자 엄마, 독하기두 허지. 애가 정신을 못 차리는구먼~ 이러다 애 죽게 생겼네~ 그래 애가 밥투정 좀 했다구 이렇게 쌩으루다가 애를 굶긴 단말여? 쯧쯧~ 경자 엄마, 젊은 사람이 그러는 거 아녀~ 애가 무슨 죄라구~ 그 엄마에 그 딸이라구 경자 이것두 보통내기가 아니네~ 아가, 이거라도 좀 먹고 정신 차려야지~”
주인집 할머니가 나를 안아 무릎에 눕히고 쑤어 온 묽은 죽을 숟가락으로 입에 흘려 넣고 있었다. 기운 없이 여전히 몽롱한 채로 입으로 들어오는 멀건 죽을 받아먹었다. 내가 밥을 굶은 지 얼마나 지난 때였을까? 그때 할머니 치마폭에서는 희미한 부엌 냄새가 났다.
나는 그때 그대로 굶어 죽었어야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엄마라는 단어만 떠 올려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난다고 한다.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리는 까닭일 것이다. 내게는 왜 그런 엄마가 아니었는지 나이들 수록 가슴에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