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두 제대로 못 떠 온다니~

겨울 김장김치 꺼내오기

by 경자의 서랍




끼니때마다 마당에 묻은 김치와 동치미를 꺼내 오는 것은 항상 내 일이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달라붙도록 추운 겨울이었다.

“ 경자야~ 동김치 먼저 떠라, 지난번처럼 동김치에 김치 국물 빠치지 말구~”

엄마는 동치미를 꼭 동김치라고 했다. 저녁상을 차릴 때마다 문도 열지 않은 채 방 안에서 동김치 먼저 뜨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김치를 먼저 꺼내면 손이나 국자에 묻은 빨간 김치 국물이 동치미에 들어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다.

김장 전에 아버지가 미리 땅을 파고 마당 한편에 나란히 묻어놓은 김장독은 해마다 다섯 개였다. 독을 묻는 장소와 김치를 담는 항아리 순서도 똑같았다. 가장 크고 둘레가 넓은 동치미 항아리가 맨 오른쪽에 있었고, 배추김치를 담은 중간 크기 항아리 세 개가 가운데 자리였고, 왼쪽에는 총각김치가 담긴 가장 작은 항아리가 있었다.





겨울 김장이 끝나면 반으로 접은 낡은 군용 텐트로 다섯 개 항아리 모두를 덮었다. 김치와 동치미를 꺼내러 가는 저녁 무렵이면 항아리 위를 덮어 놓은 낡은 군용 텐트는 뻣뻣하게 얼어있다. 부러질 듯 언 텐트를 한쪽으로 조심스레 제치고 뚜껑을 열면 동치미 국물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고, 국물을 떠내는 국자가 드나들 만큼의 구멍만 가운데 겨우 뚫려 있다. 작은 구멍으로 국자를 넣어 무를 꺼내려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국자를 포기하고 손을 넣는다. 옷이 젖을까 소매를 둥둥 걷은 다음 얼음 구멍으로 손을 넣어 노랗게 익은 적당한 크기의 무를 하나 꺼낸다. 삭힌 고추와 함께 켜켜로 얹은 파와 누렇게 익어있는 갓도 적당히 건져서 그릇에 담는다. 그런 다음 얼음 구멍으로 국자를 넣어 동치미 국물을 뜬다.

배추김치에도 살얼음이 켜켜이 끼어있다. 맨 위에 덮인 우거지를 살짝 들추고 파란 겉잎으로 감아 놓은 잘 익은 김치를 한쪽 꺼내 그릇에 담는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들춘 우거지를 제자리에 꼭꼭 눌러 놓아야 한다. 꺼낸 배추김치와 동치미 그릇을 옆에 놓고 제쳐놓은 텐트를 덮어 김장독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손은 이미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다.

“너는 담아 놓은 김치두 제대로 못 떠 온다니~ 이거 봐라. 무가 이렇게 큰데 국물이 요만큼 이믄 니 눈에는 괜찮어 보인다니? 어? 동치미가 무만 먹자는 김치라니? 국물하고 알맞게 떠와야 할 거아녀~ 그릇이 작어서 국물을 조금밖에 못 담을 거 같으믄 무를 작은 걸루 고르든가, 아니믄 애초에 그릇을 큰 걸루 갖구 가서 국물을 넉넉히 뜨던가 그래얄 것 아녀~~ 으응? ”


시린 손가락을 불어가며 김치를 떠 오면 이런 타박이 이어졌다. 나는 김치를 가지러 갈 때마다 가슴을 벌렁거리며 긴장했다. 어떻게 떠가야 엄마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오늘은 혼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국자로 동치미 국물을 더 펐다가 덜어냈다 했다.





(사진출처: 국립농업 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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