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의 세 번째 스무 살 1

첫 번째 이야기 : 쉰여섯에 16학번의 대학생이 되었다.

by 경자의 서랍


용기 내기



살면서 가장 큰 열등감은 ‘못생긴 외모’와 ‘학력’이었다.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못생긴 것에 대한 비아냥에 초등학교만 겨우 다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불편하지는 않았다. 직장생활 경험이 없어 이력서 쓸 일도 없었고 대인관계가 변변치 않은 탓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도 내게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하거나 최종학력이 어디까지 인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이 두 개의 열등감은 시간이 흘러도 극복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가끔 빼내지 못한 가시처럼 아플 때가 있었다.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 어디쯤 어설프게 늙으며, 잉여 같은 시간이 내게 생기니 아픈 과거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더 이상 남은 시간이라도 후회 없이 보내고 싶은 두 생각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겨우 용기 내어 스스로 바꾸지 못하는 ‘못생긴 외모’는 포기하고 ‘학벌’이라도 극복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인 내가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었다. 막막했지만 도전을 했다. 쉰다섯 살이 되면서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 들었고 그해 겨울에 시작한 공부로 4월에 중학교 과정을 끝내고, 8월에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까지 마친 후, 그해 바로 대학에 원서를 냈다.


해묵은 열등감 하나가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는 거였다니.. 못할 거야, 어려울 거야, 할 수 있겠어? 너무 늦었잖아. 그동안 주문처럼 내게 속삭이던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싶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도 아니었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학위를 받는 방송통신대학도 아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이었지만 스무 살짜리 신입생들과 강의를 들으며 4년을 꼬박 다녀야 하는 일반 대학이었다. 오래 묵은 열등감이 내린 과감하고 용감한 선택이었다.


십 대 반 이상을 작은 골방에서 혼자 주눅 들어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서툴렀다. 더구나 혼자도 버거운 나이에 또래도 아닌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할 대학생활은 만만한 결정이 아니었고 사실 자신도 없었다.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며 지금 내 선택이 최선인지 백만 번쯤은 고민을 했다.



대학 면접 보던 날


면접을 보던 날은 토요일이었다. 겨울 초입에 든 11월의 날씨는 '사흘 굶은 시어머니' 얼굴처럼 잔뜩 흐린 채 바람까지 부는 추운 날씨였다. 학교 곳곳에는 학교 지리에 낯선 수험생을 위해 재학생들이 '안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추위 속에 서 있었다.


간혹 근처를 지나가면서 학생이나 관계자가 아니면 못 들어오는 줄 알았던 넓고 웅장한 학교 건물을 보면서 억지로 품고 온 자신감은 순식간에 다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 나는 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어차피 중간에 못 버티고 그만 둘 바에는 시작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것 등, 부정적인 여러 생각들이 다시 나를 흔들었다.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들리던 낯익은 유혹의 소리였다. 아침까지 외우며 연습했던 면접 예상문제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몇 번 신지 않은 새 구두 속 애꿎은 발가락만 꼼지락대며 오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망설임에 선뜻 차에서 내리지 못했지만 마지막 기회일 듯했다. 여기서 차를 돌리면 영영 내게 이런 기회는 없으리라. 그리고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고 돌아온 나를 후회하고 또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포기를 붙잡았다. 목표를 가지고 어린 학생들과 부끄러움 무릅쓰고 치른 ‘검정고시’ 시험장의 어색했던 상황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공지된 면접시간이 코앞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행사용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고 안내하던 여학생이 내게 말했다.


“어머님, 여기서부터는 수험생만 들어갈 수 있어요. 보호자는 저 쪽에서 대기하셔야 해요”


나는 정말로 부끄러웠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듯 느껴졌다. 바리케이드 뒤편에 서 있던 수많은 보호자들 눈빛이 뒤통수로 느껴졌다. 내가 수험생 신분으로 면접 보러 온 것을 말하자 승무원처럼 단정하게 제복을 입은 여학생은 당황해하며 두어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죄송할 일이다.


대학생활은 이렇게 삐걱거리며 드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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