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 쉰여섯에 16학번의 대학생이 되었다.
서툰 시간들
오리엔테이션에 가지 않고 첫 수업에 들어가던 날이다. 조심스럽게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나를 본 학생들이 내가 교수님인 줄 알았는지 엉거주춤 거리며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누가 나를 학생으로 보겠는가? 나는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며, 같은 신입생임을 밝히고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했다. 나와 아이들이 서로 뻘쭘한 순간이었다.
수업에 들어오신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당황해하며 학생인 것을 확인하셨다. 민망하고 어색한 시간은 며칠 동안 되풀이되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 시선은 내게로 모아졌고 나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다.
어린 시절에 생긴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낯선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조용히 묻혀 지내는 것이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빛나는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될 줄 알았던 학교생활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리가 없어도 내 옆에 앉는 것을 불편해했다. 나는 수업 때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무인도처럼 혼자였다. 낯설고 헛갈리는 일이 있어도 물어볼 사람조차 마땅히 없었다. 각오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 선택이 어설펐고 또 허방을 짚는 것 같아 우울했다. 목련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때에 맞게 순리대로 해야 하는 일을 거스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대부분의 수업이 있던 ‘인문관’ 앞에는 커피와 와플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와플을 먹어 본 적이 없던 나는, 배도 고프고 맛도 궁금했지만 그것을 사려고 아이들과 줄을 서고 주문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공강 시간에는 마땅히 갈 곳도, 말을 나눌 사람도 없어서 차 안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루하고 외로웠지만 누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학교에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다양하게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한동안 바닥만 본 채 걸어 다녔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못 배운 한풀이를 하듯 머리가 깨지도록 공부에 최선을 다 해보려던 야심 찬 계획은, 점점 견뎌보자는 것으로 타협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위염 진단도 받았다. 그렇게 힘겨운 3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허방 짚던 3월은 지나가고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팀을 꾸릴 때도 가시방석이었다. 누가 나와 같이 하고 싶어 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역시 눈치를 보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남은 사람끼리 함께 하거나 노련한 교수님의 배려로 가, 나, 다 이름 순서로 강제로 팀이 꾸려지기도 했다.
그렇게 조원들과 조별과제를 위해 모여 토론을 하고 결과를 정리하고,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찾아 개인과제를 하면서 같은 학번 아이들 얼굴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학에서의 수업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며 수업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고, 나를 점점 학생으로 자연스럽게 대해주는 교수님과 아이들의 시선에 자신감이 생겼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함께 웃으며 스무 살이 된 착각에 종종 빠지기도 했다.
‘본관’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수업이 있던 ‘인문관’과 잔디광장을 가운데 두고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는 ‘자연관’ 그리고 식당이 있는 ‘학생회관’과 '도서관' 등, 학교 건물들의 대략적인 위치와 이름도 알게 되었다. 마음까지 설레게 하는 봄꽃이며 운동장의 색깔을 바꾸고 있는 잔디의 고운 초록색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치사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수단으로 지갑을 열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기도 했다.(그래 봐야 학생식당의 분식이나 덮밥, 학교 근처의 순대국밥, 아니면 '인문관'앞의 저렴한 와플과 커피였지만.) 덕분인지 ‘이모님’이라는 호칭으로 무인도 같던 내 옆에 스스럼없이 아이들이 와서 앉았다. 식권으로 주문하는 느끼한 소스가 얹어진 ‘마요’라는 이름이 끝에 붙은 학생식당의 음식들이나 분식점의 잔치국수나 떡볶이도 아이들과 함께 먹게 되었다.
어린 학생들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고. 강의실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때로 낯설지만 대견하기도 하다. 서툰 대학생활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해져 가면서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상받는 기분에 행복함을 느낀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