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

세 번째 이야기 : 쉰여섯에 16학번의 대학생이 되었다.

by 경자의 서랍


비밀에 대하여




나는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언젠가 쓸데가 있겠지 하면서 아이스크림에 딸려 온 플라스틱 숟가락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방 서랍에 넣어 놓는다. 그런데 검정고시 인강 교재만큼은 시험이 끝난 후, 아이들이 볼까 싶어 바로 재활용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나름 눈물겨운 의지의 행동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것을 감추었다. 아니,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 잘못이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묻지 않았으니까 거짓말은 안 했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런 상황을 얼버무려 넘어간 것은 맞다. 살면서 아이들에게도 말 한 적 없다.


말하는 순간 '툭'하고 터져서 감당 못할 것 같은 서러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용기 내지 못했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이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상대방이 아는 순간 내 말과 행동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나를 무시하는 편견을 가지고 대할까 무서웠던 것이다.



대학 입학식이 끝난 후에야 전화로 아이들에게 알렸다.


"엄마, 대학에 다니기로 했어"


며칠 후, (두 아들 모두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아이가 왔다.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그냥 쉽게 집에서 공부하는 '방송통신대학'에 가지 그랬느냐고, 그래도 엄마의 선택이니까 응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엄마가 대학에 다니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 과의 '학회장'을 만나 우리 엄마 여러 가지로 신경 좀 써주기를 부탁한다고 말을 하려 했단다. 하지만 혹시라도 엄마의 독립적인 선택에 방해가 될까 싶어 말하지 않았다면서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 애들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 요즘 애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애들이 아닐 수도 있어, 나이 많은 사람의 친절을 불편해 할 수도 있다구~"


이것저것 당부하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책임지는 보호자의 의무가 내게서 떠나 피보호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보호자 역할을 다 했구나.. 섭섭함과 든든함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운전 조심하고 다니라는 말을 끝으로 아들은 갔다.


엄마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고 이제야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가는 거란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영화 이야기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가 생각난다. 이것은 나의 시선에서 본 대략의 줄거리다.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1958년이 배경인 영화다. 전차 검표원으로 일하던 ‘한나’는 길에서 아파하는 어린 학생 ‘마이클’에게 도움을 주면서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한나’는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마이클’은 그런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어느 날, 성실했던 그녀는 관리직으로 승진을 제안받지만 문맹을 감추려고 승진을 포기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시간이 흐르고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친구들과 나치 전범의 재판을 참관하다가 ‘한나’가 피고인중 하나가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나'는 글을 몰라도 할 수 있는 나치 수용소의 경비원을 했던 것이다. 수용소에서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보고서의 글씨가 ‘한나’의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문맹임을 밝히면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임을 인정한다. 그렇게 ‘한나’는 문맹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종신형을 선택한다. 그만큼 문맹은 그녀의 수치심이었고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던 것이다.

'마이클'도 문맹임을 감추려 하는 자존심 강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며 옛날처럼 책을 읽고 녹음해서 감옥의 '한나'에게 보내준다. 녹음을 듣고 스스로 학습을 통해 글을 익히며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마이클’과도 재회한다. 하지만 그녀는 출소를 앞두고 그동안 읽은 책들을 밟고 올라서서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너무도 유명한 영화라서 리뷰나 비평은 차고도 넘친다. 해석 또한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나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한나’는 곧 나였다. 그 누구도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대한다. 거짓말은 그런 상황에서 하게 된다. 나와 '한나'는 ‘회피’를 선택한다.


'한나'가 스스로 글을 익히고 책을 읽게 되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세상을 넓히는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까지 현재만 생각하고 살았던 '한나'가 과거와 미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지고, 무지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보이는 진실들을 감당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나도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크게 불편하지 않게 그동안 살아왔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완전하게 솔직하지는 않으니까. 새삼 불거진 엄마와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학벌 열등감에서 벗어난 것이 나를 꼭 행복하게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화 속 '한나'처럼 무지에서 벗어나자 어린 시절 학대의 상처가 다시 곪기 시작했으므로.


엄마의 잔소리는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해소라고 이해했다. 그걸 받아줄, 만만한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지금이라도 그런 엄마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딴에는 그동안 최선을 다 했다.


이제 모든 건 빈 들판에 핀 개망초만큼이나 다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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