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섯이라는 나이에 대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해가 더딘 것도 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필수 교양으로, 학기당 3학점씩 6학점을 이수해야 졸업 요구조건이 충족되는 ‘CT와 SW의 이해’(computational thinking software)라는 과목이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3시간으로 이어졌다. 1학기에는 ‘스크래치’를 이용한 ‘코딩’ 수업이 주로 이루어졌고 2학기에는 ‘포토샵’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기초적인 것을 배웠다고 했지만 내겐 너무 생소한 것들이었다.
지금도 수업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시간표를 보고 찾아간 강의실은 문이 잠겨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육용 노트북 컴퓨터의 분실이나 훼손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직 얼굴도 낯선 아이들과 함께 강의실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와 물었다.
“할머니는 집이 어디세요?”
그게 왜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줌마도 아니고 할머니라니.. 놀라고 웃음도 나왔지만 당황하지 않고 표정관리를 하면서 대답해 주었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며칠 전 염색까지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할머니로 보이는구나 하는 인정하기 싫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낯선 수업에 긴장을 더했다.
컴퓨터 수업만 하는 강의실은 책상에 여섯 명이 앉아 수업을 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각각의 칠판도 따로 있었다. 나는 교수님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교탁에서 먼 곳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는 동안 내 옆 자리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또 섬처럼 혼자 긴장하며 앉아있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벌떡 일어나 집에 오고 싶은, 목까지 차오르는 유혹을 견뎌야 했다. 다행히 강의에 늦은 아이들 두 명이 둘러봐도 자리가 없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옆자리로 왔다.
목소리까지 예쁜 젊은 여교수였다. 마음만큼은 나이 들어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교수님이 강의실 한 편의 철제 캐비닛을 열고, 누가 몇 번 노트북을 사용하는지 기록한 뒤 번호표가 달린 신형 노트북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집에서 항상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용하던 나는 노트북 자판이 손에 익숙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험난한 이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불길한 예감의 첫 신호였다.
첫 시간은 ppt를 띄우고 그 문제를 따라 하는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컴퓨터 메모장에, 일어나서 학교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쓰거나, 내 영문 이름에 컴퓨터가 인식하는 2진법의 숫자를 쓴다거나, 컴퓨터에 관련된 사람들의 짧은 영상을 보고 그것을 정리해서 느낀 점을 적어보는 것도 했다.
다음 시간에는 스크래치를 이용하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스크래치를 이용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스크립트와 스프라이트라는 낯선 용어부터 이해해야 했다. 앵무새 날아가기, 화씨온도 구하기, 도형 넓이 구하기 등 문제는 비교적 쉬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처음 접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하라는 대로 실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내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띄워진 ppt를 보면서 여유롭고 재미있게 웃고 떠들며 문제를 푸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중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수업은 항상 마지막 결과물을 저장하고 그것을 첨부파일로 교수님에게 보내고 자신이 사용한 노트북을 반납하면 끝나는 것이다. 단계가 나아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내가 헤매고 있는 동안 문제를 끝낸 아이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가버렸다. 넓은 강의실은 점점 비어 가고, 그것을 느끼면서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따라가지 못한 문제와 힘들여 풀었음에도 저장하기를 깜박해서 날려버린 문제까지 있었다. 긴장하고 허둥대면서 여섯 문제 중에 겨우 세 문제만 완성된 파일로 보낼 수 있었다. 최선을 다 해보고 그래도 안 될 때는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지... 쿨 한 척 정신승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강의실을 나오는데 내 등에서는 땀이 났는지 3월의 찬바람이 등으로 느껴졌다.
그 뒤로도 험난한 코딩 수업은 계속되었다. 일 못하는 종갓집 며느리가, 돌아오는 제삿날을 걱정하는 심정으로 나는 화요일이 맞이했다. 이렇게까지 학교를 다녀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매번 들었다. 첫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가라앉는가 싶었던 위염증세까지 더해 달콤한 새벽잠을 깨우기 일쑤였다. 누가 시키면 할 수 있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