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수염붓과 선 이야기
사회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線)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선을 얼마나 넘느냐의 기준에 따라 비난을 받던가 처벌을 받는다.
나도 나름 선이 있다. 내 기준의 선을 넘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상냥하고 관대했고 반대로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고 차갑게 굴었다. 내 기준의 선을 내 영역이라 생각해서인지 선을 넘는다 생각하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지금 다른 이의 선을 넘고 있지 않는지 지나치게 신경 썼다.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선은 경계가 좁으면서 너무 분명했다.
요즘 자꾸 주변 사람들이 선을 넘는다.
며칠 전 내가 아팠다. 식중독에 걸려 수영과 사우나에 사나흘 못 갔더니 안부전화가 예닐곱 통도 넘게 왔다. 내게 거의 보름치 통화량이다. 죽을 배달시켜 보낸 사람도 있었다. 상추쌈을 누군가에게 싸준 적도 없지만 누가 싸준 상추쌈을 받아먹는 건, 싸주는 것보다 서른여섯 배쯤 내게 어려운 일이다. 이런 내게 사람들이 자꾸 낯설게 선을 넘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례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내가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선의 기준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이제부터 나는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날 붓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다니던 화실에도 선생님이 쓰던 여러 종류와 크기의 다양한 붓들이 있었고 낯설지 않아서일까? 붓이야기는 재미있었다. 화실에서는 주로 양의 털로 만든 양모필(羊毛筆)을 썼다. 그게 가장 일반적인 것이라 했다.
붓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떻게 저런 재료로 붓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은 희한한 재료의 붓이 있는가 하면 저런 붓으로도 그림이 그려질까 싶은 투박하고 거친 붓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최고가 있기 마련이다.
붓의 좋고 귀하기로 세 번째는 족제비털로 만든 황모필(黃毛筆)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호액필(狐腋筆)이며 그중 으뜸은 쥐의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이라고 한단다. 족제비털로 만든 붓은 들어본 적 있지만 여우겨드랑이 털로 만든 붓이며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부리부리한 두 눈과 귀아래 양 옆으로 흩날리는 듯한 수염이 인상적인 자화상속 그 멋진 수염을 바로 쥐수염붓인 서수필로 그렸다고 한다.
나는 그 자화상을 볼 때마다 저 수염을 어떤 붓으로 그렸을까 궁금했었다. 세필(細筆) 붓으로 선은 가능하지만 긴 수염을 그리기까지 붓의 먹물이 말라버릴 것 같아서였다. 쥐수염붓으로는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 쥐 몇 마리가 희생되어야 붓 한 자루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쥐수염으로 만든 붓일까? 어떤 원리로 쥐 수염이 그걸 해 내는 것일까? 옛사람들은 그것을 또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쥐수염붓도 그렇지만 그냥 여우털도 아니고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붓도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나는 쥐수염붓과 여우 겨드랑이털 붓이야기에 흥분해서 잊히기 전에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슷한 흥미를 느끼는 누군가와 마구 나누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이 길어지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 쥐수염붓이나 여우 겨드랑이털 붓에 대해서 들어는 봤니?" 이러면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몇 마디 하면 놀라 말한다.
"오늘 경자 입 터졌네!"라고 하면서.
어느 성형외과에서 어떤 주사를 맞으니까 주름에 효과가 좋더라.
이번에 어디에 짓는 아파트가 인기라더라.
누구네는 시댁 땅 보상금이 나와서 이번에 얼마 받았다더라.
요즘 핫한 주사를 맞고 누구는 몇 킬로 감량했다더라.
내 주변에서는 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난 이런 주제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대화에 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 주변 사람들과 '공동관심사'가 달라서 말하지 못하는 것일 뿐, 내가 과묵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도 사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쥐수염붓 이야기라든가,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파리인들이 좋아하는 바게트빵의 역사라든가,
이 더위에 유럽에는 왜 에어컨이 없어서 고생을 하는가라든가,
우리는 왜 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는가.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이야기 주제다. 토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 주변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따분해한다.
늙을수록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한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외롭지 않아?"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외로운 게 뭔데?'라고 물었었다.
난 오늘, 쥐수염붓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지 못해 외롭다.
그리고 오늘, 선 넘는 사람들이 없어 외롭다.
이 나이에 어설프게 자꾸 흔들리는 내가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