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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내 May 07. 2020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에 대한 고정관념

이찌고 이찌에,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일본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이때 만났던 친구들이라고 하고 싶다. 혼자였으면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일본 생활을 즐겁게 해 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때 기억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일했던 호텔에는 나와 함께 호텔에서 연수를 하는 한국인 친구들 그리고 같이 일했던 일본인 친구들이 참 많았다. 나의 첫 타지 생활, 이때 함께 해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힘든 시간을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참 감사하다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게!



일본에는 ''本音, 혼네' 그리고 '建前, 다테마에'라는 말이 있다. 직역을 하자면 '겉내'와 '속내' 정도 일까나? 겉내로 말하는 것과 속내로 말하는 게 따로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자기의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 특유의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나에게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그래서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친구들을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늘 일본인 친구들이 하는 말은 고지 곧대로 듣지 않고 한번 돌려서 다시 생각해서 들었다. 이건 예의상 그냥 하는 말인 '다테마에'일 거야- 하면서.


일본에 가기 전에는 일본인 교수님에게 이 '다테마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혹시 일본에 가서 일본 친구가 집에 초대했다면 그건 다테마에일 가능성이 높다며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를.. 그냥 '집에 한번 놀러 와!'하고 하는 말이었는데 정말 집에 갔다가는 집주인이 난감해 할 수도 있다며 일본인들의 다테마에를 잘 파악할 줄 알아야 해!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집에 초대를 받았다. 물론 일본 가기 전부터 들어왔던 말이니 ' 아 이게 바로 그냥 말로만 하는 집 초대구나!'로 생각해서 그냥 웃으면서 그 초대를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호텔에서 일하는 객실 부서의 '키쿠타상'이라고 하는 할머니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초대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진짜 초대였다. 그 할머니의 친구가 그 유명한 '욘사마'에 빠지는 바람에 한국인 친구를 정말로 사귀고 싶어 했던 것.. 음식까지 진수성찬으로 차려두고 기다렸다는데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무시해 버렸으니 굉장히 실례가 된 짓을 한 꼴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중에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욘사마' 이야기로 마음은 풀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일은 정말 죄송하다.


이런 일이 있고 나니 내 안에서 고정관념이라는 게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정관념으로 사람들을 일반화한다는 게 참 무섭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기에 이런 관념이 생긴 거겠지만은 100%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고 치부해 버릴 수는 없는 건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이때부터 내 마음에 이런 관념들이 자리 잡지 않도록 노력했다. 1%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도 존중해 줄줄 알아야 한다고-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 또 집 초대를 받았다. 쉬는 날 다 같이 모여서 타코야키를 만들어 먹자고 신나는 얼굴로 나를 찾아온 시호짱.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나의 친한 일본 친구 중 하나다. 이번에는 이게 겉내인지 속내인지 알아내려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초대에 흔쾌히 응했고 재밌게 타코야키를 만들며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때 그 친구의 초대를 또 한 번 오해했더라면 일본 생활의 가장 큰 추억 중 하나를 잃었을 수도 있다.


일본 친구집에서 타코야키 만들어 먹었던 날:)


그래도 그 예의상 하는 말인 다테마에 덕분에 일본인들은 참 친절하다는 인식이 있다. 사실 정말 친절하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삿포로에서 길을 알려주었던 자전거 타는 언니가 생각이 난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종이지도를 들고 힘겹게 그날 묵을 호텔을 찾아가고 있을 때 짠하고 나타난 자전거 탄 언니. 지도를 한참을 보더니 여기 인 것 같다며 길을 알려주었는데 자기도 확실히 잘 모르겠다며 미안하다고 하고 사라지셨는데 그러고 한 십 분 뒤 즈음 다시 길을 헤매고 있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길을 가다가 내가 찾던 호텔을 찾았다며 길을 알려주겠다며 나보다 더 신난 얼굴로 나를 따라오라던 그 언니. 그냥 길 잃은 외국인들의 길을 찾아준 게 뭐가 그리 신이 났던 건지 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서 까지 그 길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때 그 언니는 길 잃고 헤매던 외국인이었던 나를 기억을 못 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언니의 활짝 웃는 얼굴이 기억이 난다.



一期一会
이찌고 이찌에


생에 한 번뿐인 인연이라는 뜻으로 일본인들이 참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이 뜻이 운명적인 만남을 뜻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한 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만남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잠깐의 만남에도 친절할 수 있는 걸까? 이게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다테마에'라도 괜찮다. 예의상이라도 웃어주며 나에게 베푼 그 친절은 굉장히 따뜻했으니까- 이 고정관념이란 게 쉽게 깨질 수 없는 거라면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 대신 생애 한 번뿐인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언제나 친절한 일본인으로 고정관념을 다시 만들고 싶다.


이찌고 이찌에, 당신을 만나서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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