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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내 May 01. 2020

프론트 근무일지, 말은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통하는거야

손님에게 상처받는 날보다 위로받는 날이 더 많았다

호텔에 처음 도착했던 날 지배인님과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이때 처음 알았다. 아 홋카이도는 뭘 먹어도 참 맛있구나! 처음 호텔에서 식사하던날 먹었던 치라시 초밥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정말 너무 맛있었거든!

지배인님은 '츠시마상'으로 불렸다. 다들 과장님 부장님 이렇게 부르는데 이 지배인님은 이름으로 불리는걸 좋아했다. 그렇게 츠시마상과 처음 만났다. 인상이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 우리는 맛있는 스시를 먹으면서 업무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서를 정해야 하는데 가고 싶은 부서가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프론트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프론트에서 일을 하려면 일본어가 능숙해야 하고 나같이 말이 조금 서툰 외국인이 프론트에서 일을 하는 건 역시 쉽지 않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근데 원체 생각보다는 말이 먼저 나가는 성격으로 잠깐 고민했던 그 생각은 뒤로하고 일단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말씀을 드렸다.


 "저... 는 프론트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지배인님은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일본인 특유의 돌려 말하기 식으로 얼 버부리셨지만 아 역시 힘들겠구나 라고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별로 서운하진 않았다. 아직 일본어가 미숙한 내가 프론트에서 일을 하는 건 역시 어려울 거라 예상을 했었기도 했고 늘 그랬듯이 그냥 한번 내뱉었던 말이었으니- 그래서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곤 친구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겠구나 싶었다. 치라시 스시를 가져오시면서 레스토랑을 소개해 주시던 매니저님도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렇게 다음날, 첫 스케줄 표를 받았다. 근데 이게 웬걸? 내 이름이 프론트 소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뭐지? 이름이 잘못 들어간 건가? 싶어서 지배인님을 다시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인상 좋은 얼굴로 허허 웃으시면서 나를 프론트 담당 과장님께로 데려갔다. 과장님은 나를 보고는 자신을 시마자키상이라며 소개를 했다.  그러면서 프론트에서 일하고 싶다고 지배인님께 말을 드린 그 자신감에 믿음이 갔다며 열심히 한다는 각오만 있으면 프론트에서 같이 일하게 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프론트에서 외국인이 일하는 건 네가 처음이라며 잘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와!!! 너무 기뻤다. 호텔 인턴쉽에 처음 붙었던 날 만큼 기뻤던 것 같다. 그리곤 눈을 반짝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がんばります!간바리마스!!(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프론트에서의 업무가 시작됐다. 같이 일하는 프론트 언니들도 참 착했고 그 당시 일본어도 참 잘 못했는데 늘 일본어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었다. 처음에는 잡일이 대부분이었다. 손님이 요청한 것들을 방으로 가져다주거나 호텔 내부의 온도 체크를 하거나 호텔 옆 매점에서 계산을 하고 물건들을 포장해 주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 업무들은 문제없이 해나갔지만 가장 힘이 드는 건 역시 일본어였다. 나름 일본어 자격증도 있고 일본어가 어느 정도 돼서 이 곳으로 온 거겠지? 하며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일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줄어들어갔다. 특히 일본 호텔에서는 경어(우리나라의 존댓말)를 써야 하는데 일본어의 경어는 정말 일본인들도 힘들어하는 수준이라 외국인인 나는 그리고 일본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나에게는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모르는 경어는 처음 일본어를 공부했을 때처럼 무작정 외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르는 게 있으면 프론트 언니들 그리고 과장님을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게 말해야 해요? 이럴 땐? 이럴 땐? 참 친절한 우리 프론트 식구들 지금 생각해보면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하나하나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심지어 프론트 담당 과장님은 내가 손님들의 체크인 담당 업무를 할 때 필요한 말들을 대사로 만들어서 에이포에 빽빽하게 써서 주었다. 그리곤 손님이 없을 때마다 과장님이 손님 역할을 하며 체크인 업무를 롤플레잉을 하며 연습을 하기도 했다. 매일 일이 끝나고 내 방으로 돌아가면 과장님이 써주신 그 스크립트를 달달 외웠다. 거의 매일 연습을 하다 보니 정말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음료가 나오는 것처럼 대사를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실전은 많이 떨렸다. 내가 처음 체크인을 도와줬던 일본인 손님들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너무 떨려서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손님이 건네준 바우처만 손에 꾹 잡고 말을 더듬었던 기억이 있다. 등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많이 떨렸다. 그렇게 몇 주 동안은 체크인을 하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보며 웃는 일본인도 있었고 시간이 없다며 다른 사람을 불러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외국에 와서 이게 뭔 고생인가.. 타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을 이때 처음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체크인 업무를 해내고 있던 중  과장님이 큰 종이 한 장을 선물이라며 가져다주셨다. 이게 뭐지? 하고 종이를 받아 들어 봤더니 우리 호텔의 앙케트 조사지였다.  우리 호텔 앙케이트 조사지에 손님이 나에 대한 코멘트를 하나 써주셨는데 너에게 기념이 될 거라며 그 에이포 크기의 앙케이트지를 확대복사 해서 큼직만 해진 종이를 펄럭 펄럭 거리며 가져오셨다. 그 앙케트 조사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일본인 분이 아닌듯한? 느낌의 직원이었어요.
일본어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손님이 내 서비스 생활 중에 만났던 내 기억에 남는 손님들 중 첫 번째 손님 되시겠다. 이때를 시작으로 서비스 관련된 일을 어언 10년째 하고 있다. 정말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못된 손님 때문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참 많았지만 이렇게 마음 따뜻하게 해주는 착한 손님 덕분에 여적까지 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사람에게 상처 받아도 사람한테 위로받는다는 말처럼 나는 손님들에게 상처를 입었던 날보다 따뜻하게 위로받은 날이 더 많았다. 감정 노동의 최고봉이라는 승무원으로서 지금 꿋꿋이 일 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내 기억 속에 마음속에 꼭꼭 남아져 있는 고마운 손님 덕분일 거라- 나에게 처음 용기를 주었던 나의 이 1호 손님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해드릴 순 없었지만 지금이라도 꼭 전해 드리고 싶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지금도 이 확대 복사된 앙케이트 용지는 우리 집 보물상자 안에 꼭꼭 간직되어 있다. 가끔 집에 와서 꺼내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미소가 지어진다. 진심은 어떻게든 통하게 돼있어!라는 말을 믿게 된 건 그 때 부터였을까? 일본어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진심이 통했던 그때 그 손님의 코멘트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콕 저장되어 있다. 그 코멘트 옆에 같이 그려주셨던 하트 표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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