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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산타바바라

미서부 해안도로를 달리다.

by 별빛

3년 만이다.

어느새 우리가 서부여행을 다녀온 지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린 매해 여름 캘리포니아를 다녀왔지만, 아이들이 참가해야 할 골프 토너먼트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창 바쁜 여름 성수기에 길게 시간을 비울 수 없어, 늘 쫓기듯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큰맘 먹고 약 2주간의 일정을 덧붙였다.


아이들이 크고 나면, 함께 여행할 시간이 더 줄어들 거야... 기회가 될 때마다 가능한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여유가 생길 먼 훗날로 여행을 미뤄두기만 하다가는, 눈 깜짝할 새 다 커버린 대학생이 되어, 엄마 아빠와의 여행보다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될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늦어버리기 전에, 아직은 귀여운 나의 아가들일 때 함께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이제 막 틴에이저에 접어든 13살 딸과 아직은 귀여운 우리 집 애교쟁이 11살 아들과 함께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잘한 일이다.

2019년 여름에 다녀온 저 여행을 끝으로, 우린 일 년이 넘도록 미국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당연히 참가하기로 예정되어있던 골프 토너먼트도 코로나로 인해 모두 취소되었고,

언제나 마음먹으면 당장에라도 다녀올 수 있었던 한국행도 이젠 비행길이 막혀 쉽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마음 편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어쩌면 다시는 마스크 없는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없어지는 것이 아닐지? 이런저런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날엔 한없이 우울해 지곤 한다.






우린 이번 여행에서 지난번 가보지 못했던 서부 해안도로의 도시들을 몇 곳 돌아보고, 온 가족이 만장일치로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뽑은 요세미티를 다녀올 예정이다.

이번엔 빠른 시간 안에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해주는 하이웨이 대신,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서부 1번 해안 도로를 이용해 몬터레이까지 느긋하고 여유 있게 둘러볼 작정이다. 한적한 해안 도로를 따라 멋진 바다를 끼고 달리는 1번 도로는 모든 미국 여행자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내던 샌디에이고의 랜초 버나도를 떠나, 산타바바라로 차를 몰았다.

3시간이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도로 곳곳의 교통사고로 인해 엄청난 정체를 겪어야 했고, 5시간이 넘어서야 간신히 산타바바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타바바라.

스페인계 이주자들에 의해 개척된 곳답게 유럽풍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국적인 바닷가 마을이다.

우리 호텔은 아담한 2층 건물로, 걸어서 2분이면 바로 비치에 갈 수 있었다.

비교적 안전한 동네로, 호텔에서 받은 지도 한 장만 들고 걸어서 동네 마트를 다니며 간식거리를 사 오곤 했다.

방 호수를 새긴 나무 조각 키홀더에 커다란 열쇠가 달린 앤틱 한 방키를 받아 들고, 복도 끝 우리 방으로 들어갔다.

파란 벽지에 하얀 조개껍질로 장식된 예쁜 방이다. 하얀 나무 창틀이 너무 이뻐 우리 집도 저런 창틀로 바꾸고 싶단 생각을 했다.

작지만 알찬 키친이 있어, 한창 시즌을 맞아 맛있었던 체리를 사다 씻어먹기도 하고, 알알이 들어차 톡톡 터지는 달콤한 옥수수를 쪄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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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냈던 Franciscan Inn & Suites.




다음 날, 우린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침 일찍 산타바바라 미션으로 향했다.

스페인풍의 주황색 기와지붕을 한 흰색의 건물이 잘 가꿔진 정원과 함께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서있는 아름드리나무가 찬란한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우린 성당 안을 구경하고, 정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예배당에 잠시 앉아 기도도 드렸다.

그냥 나오기 아쉬워 기념품을 파는 작은 상점 안에서 한참을 보내며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골랐다.

나는 나무로 조각된 작은 십자가를 하나 샀다. 자석으로 되어있어 받침대 위에 세워 놓을 수 있는 십자가인데 지금도 우리 집 현관 앞에 예쁘게 놓여있다.

기념품 샵 안에는 예쁜 것들이 참 많았는데, 나중에 더 사 올걸.... 많이 후회를 했더랬다.

여행지 기념품은 맘에 드는 걸 발견했을 때 망설임 없이 반드시 사야 한다.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 나중에 언제 다시 그곳을 가게 될지 모르니, 앞으로도 기념품은 그때그때 꼭 사기로 마음먹었다.



산타바바라 미션




성당에서 나온 우리는, 식당들이 많이 몰려있는 번화가로 나왔다.

한 바퀴 동네를 둘러보고는 사람이 가장 많은 브런치카페를 골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한참을 기다렸다.

역시, 사람들이 많은 곳은 무조건 맛집이다.

매콤한 케이준 스파이스가 들어간 잠발라야와 에그 베네딕트를 먹고, 얼음 가득 아이스커피로 에너지를 풀로 충전했다. 점심을 먹고 나와 근처를 잠시 산책한 뒤, 우린 산타바바라 피어로 향했다.



낚시에 열광하는 아들은, 이곳에서 낚시를 하겠다고 한참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우린 두 개의 낚싯대를 빌리고, 미끼로 쓸 냉동 오징어도 구입해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7월의 한낮, 산타바바라의 태양은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꽂았다.

마땅한 그늘을 찾지 못해, 무방비 상태로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낚시를 하는 걸 몇 시간이나 지켜보고 있었다.


한없이 펼쳐진 바다는 아름다웠고,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비록 뜨거운 햇살에 살갗이 달아올라 점점 따가워지는 걸 느꼈지만, 함박웃음을 지은채 신나게 낚싯대를 휘두르는 아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몇 번의 묵직한 미역을 낚아 올린 뒤, 간신히 한 마리의 우럭을 닮은 물고기를 잡고 낚시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미역을 낚아올린 딸과 끝없는 기다림끝에 물고기를 잡아올린 아들




낚시를 마친 우리는, 바로 옆 Santa babara Shellfish Company라는 시푸드 레스토랑을 찾았다.

맛집답게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시키고, 킹크랩과 성게알을 시켰다. 대기하는 동안 옆에 앉아 함께 수다를 나누었던 사교성 넘치던 멕시칸 아줌마가 한 달에 한 번은 꼭 이걸 먹으러 두 시간 거리를 달려온다고 강추한 '차피노'라는 음식도 시켰다.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매콤한 토마토 수프가 사워도우 안에 들어있었는데, 이게 너무너무 맛있었다. 과연 두 시간 거리를 매달 운전해 올만 하다!




왼쪽부터 성게알, 차피노, 킹크랩 삼총사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로 다시 에너지 충천을 마친 뒤, 우린 비치로 향했다.

해가 한풀 꺾인 비치가는 새파란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으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근처 작은 상점에서 하얀 배구공 하나를 사 와 비치에서 해가질 때까지 비치발리볼을 했다.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사람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과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해가 지고 있는 멋진 바다.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하얀 배구공을 높이 올려 힘껏 쳐대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가슴 깊이 담았다.

그간 토너먼트를 치르며 힘들었을 아이들이 오래간만에 긴장을 풀고 맘껏 뛰어노는 모습에 나도 행복해졌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여행은 더 달콤한 법이다.

여행중-

나는 지금 그 극강의 달콤함 속에 있다!



눈부신 햇살을 드리운 아름드리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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