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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에서 야생곰과 마주치다!

두 번째 요세미티 여행

by 별빛

구불구불 멀미가 날 것 같은 산길을 돌고 돈다. 두 번째 오는 이곳, 바로 요세미티다.

여전히 우거진 나무숲은 푸르르고, 세찬 강줄기가 흐르는 곳. 3년 전 미서부 여행을 하며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린 그때와 같은 숙소를 잡았다. 방 옆으로 멋들어진 강줄기가 흐르는, 테라스가 아주 큰 그 방.

테라스에서 매일 마주하던 멋진 일출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7월 중순의 요세미티는 산속이란 말이 무색하리만큼 푹푹 찌는 폭염의 날씨다.

6월 중순에 왔던 그때는 싸늘하고 건조한 찬 공기에 홀딱 반했었는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요세미티는 한여름이 되어있었다. 어쩌면 올해가 유독 더운 해인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도착해 익숙하게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와 테라스 문을 활짝 열었다.

솨아- 시원한 물소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짐을 풀기도 전에 테라스로 나간 아빠와 아이들은, 놀러 온 다람쥐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먹이라도 던져주고 싶지만, 야생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불법이다.

귀여운 몇 마리의 다람쥐들이 부지런히 돌 사이를 누비며 나무 열매를 찾아 두 손으로 잡아들고 오도독오도독 작은 이빨로 갉아먹는 모습을 한참 구경했다.

이 산속의 테라스가 그리워 다시 찾아온 곳.... 나는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끝없이 흘러 내려오는 강물을 보며 풀내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머리를 맞대고 다람쥐를 구경하는 중




환상적인 날씨다.

식상한 저런 표현 말고 더 좋은 표현을 찾고 싶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쭉쭉 뻗은 기다란 나무 사이로 살며시 보이는 폭포수의 하얀 물줄기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린 그 물줄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괌에선 쉽게 할 수 없는 하이킹. 우거진 나무숲 속으로 햇빛을 피해 들어간 우리는 아스팔트가 아닌 고운 흙길을 걷는다. 중간중간 깊게 박힌 돌부리를 피해, 가끔은 발목은 삐끗해 휘청거리기도 하면서 청량한 공기에 머릿속의 잡다한 것들이 맑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땀이 송글 송글 솟아난다. 시원한 얼음물을 꺼내 한껏 들이키고, 잠시 돌밭으로 자리를 옮겨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얕은 계곡물에 손을 담가본다. 얼음처럼 차갑다. 산속의 계곡물은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움을 선사한다.



나무 사이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멋지다.




얼굴을 때리는 미스트 같은 폭포수가 느껴진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아름다운 신부의 베일을 닮은 폭포.

눈을 감고 얼굴을 돌려 한참을 그렇게 자연의 미스트를 맞았다.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싱그러움. 참 행복하다.

나이를 들수록 자연이 주는 행복함에 감탄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어릴 땐 당연하게만 여기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대단한 감동과 감사함을 주곤 한다.



아름다운 산길


폭포수의 정기를 잔뜩 받아 들고,

우린 그림 같은 풍경을 간직한 아름다운 미러 레이크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 장면이 감탄을 자아낸다.

인간은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한껏 행복함에 부풀어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걷던 우리에게 맞은편에서 오던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There are Bears!

뭐? 설마 곰이 있다고?

우린 사람이 다니는 한낮의 이 길에 곰이 설마 나타나겠냐며 의심하면서도, 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냅따 뛰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정말이었다.

저기 숲 속에 곰들이 뛰어다닌다.

아기곰 두 마리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모습에 깜짝 놀란 나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아들도 그 옆에서 곰을 구경하고 있다.

나는 혹시라도 공격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잔뜩 긴장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 그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3년 전에도 지나던 이 길에서 야생곰을 만나다!!!

두 번째 온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라고 하듯,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곰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우린 두 마리의 아기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요세미티에서 마주친 야생곰



대단한 우리의 무용담을 신나게 떠들어대며, 미러 레이크에 도착했다.

우린 물가 옆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간식 가방을 열어 체리와 옥수수를 꺼냈다.

산속에서 먹는 간식은 왜 이렇게 맛있을까?

어디에선가 나온 다람쥐들이 우리 주위를 뱅글뱅글 맴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그림 같은 산의 경치를 감상했다.




미러 레이크에서 피크닉을 즐기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큰 나무들이 가득한 숲길을 지나고, 사슴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던 파킹랏을 지나 하프돔이 잘 보이는 멋진 곳을 발견했다.

차를 세우고 내려, 한참을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내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지금 이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 오래도록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프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남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다음날, 우린 글레시어스 포인트로 향했다.

멋진 절경을 보기 위해 한참을 높이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 천 길 낭떠러지의 꼬불 꼬불 산길이 한없이 이어진 길이다. 물론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 잠깐이라도 경치를 보느라 한눈을 팔다가는, 도로를 벗어나 그대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처박혀 버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곳이다.

가는 중간 몇 번이나 이 길을 내가 또 왜 왔을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절벽과 우리 차 사이에는, 타이어의 가장자리로 불과 50센티도 안 되는 공간만 있을 뿐이다. 중간중간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그 공간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심장은 점점 쪼그라들어, 없어질 지경에 달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



다시 봐도


멋지다.


한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




내 눈으로 이런 풍경을 담는다는 게 황홀할 따름이다.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이다.

안타깝게도 카메라에 찍힌 사진 속 풍경은,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광의 반도 못 따라온다.

어느새, 간이 콩알만 해 지며 올라온 기억은 다 지워지고,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만 든다.

사방을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내고, 산꼭대기의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고,

다음 장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산꼭대기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특별히 맛있다.



지난번 가보지 않았던 곳인,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자이언트 세콰이어이다.

그런데, 가다 보니 아까보다 더 심한 낭떠러지의 좁은 길이 끊이지 않고 구불구불 이어진다.

바로 옆을 내려다보니 머리가 핑~ 돌며 아찔하다. 높디높은 절벽, 그 옆은 푸르른 나무로 덮인 숲이 아니라 앙상하게 타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저 아래 바닥까지 다 내려다 보인다. 이 길을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하다.

이곳을 찾은 남편을 끝없이 원망하며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렸다.

2018년 요세미티에는 아주 큰 산불이 났었다. 그때 홀라당 타버린 숲은 푸르른 나뭇잎 대신 새까만 가지만 남겨버렸고, 울창한 초록빛 숲이 아닌,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까만 나뭇가지로 뒤덮인 황량한 흙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무서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곳이 다시 예전의 푸르름을 찾으려면 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목숨 내놓고 온 세콰이어 숲



하루 종일 산행을 한 우리는 랏지로 돌아와 수영을 하기로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숲 속의 수영장.

빨갛게 물들던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떠오르고, 수영장 물이 차갑게 느껴지는 산들바람이 불 때까지 우린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이곳에 온 지 삼일이 지났다.

방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우리의 여행을 이야기했다.

바로 앞 무언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길을 돌려보니, 야생 너구리 한 마리가 남편의 발 앞까지 와있다.

반짝이는 그 눈빛에 소스라치게 놀란 우린, 소리를 지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소한 모든 것이 재미나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의 순간들-

이 숲 속의 싱그러운 산들바람이 오래도록 그리울 것이다.



IMG_3605.jpg 운치있는 산속의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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