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자 베네핏, 이메일 압박 없이 쉬기.
7번째 회사, 햇수로 7년간의 시간을 보낸 곳에서 커리어의 26년 차를 마감하고 이직을 앞두고 있다.
직장인에게만 주어지는 몇 안 되는 특권 중의 하나, 이직하기 이전 3주간의 쉼을 만끽하고 있는 중.
직장인에게 휴가란 게임의 퀘스트와도 같아서, 눈치 싸움에서 이기거나 (요즘은 덜 해졌지만 팀 업무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기에 휴가를 내는 건 눈치가 꽤 보이는 일 중의 하나이다), 요행히 상사가 (또는 클라이언트가) 휴가를 내는 시기에 내 휴가 시기도 맞아떨어지거나, 휴가를 내는 시기가 비수기이거나 가족들의 여유 시간과도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마음과 재정의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휴가다운 휴가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어려운 퀘스트를 뚫고 휴가를 냈다 해도 휴가지에서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혹시나 급한 문자, 카톡이나 전화가 오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지 않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휴가 후 출근에서 밀린 일을 걱정하지 않는 직장인은 또 몇이나 될까.
일로부터의 온전한 분리 detachment와 쉼 pause 가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책과 코칭이 쏟아지지만, 생업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가 말처럼 쉬울까. 지금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통신 24/7의 세상에서.
하지만 이직 전에 누릴 수 있는 잠시의 기간이야말로 비로소 이런 온전한 detachment 가 가능한 시간이다.
이메일을 습관적으로 열어봐도 홍보 DM이고, 업무 카톡과 전화,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시간.
지난 7년간 이런 온전한 마음적 자유를 누린 적이 있던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와의 약속도, 제출 기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의 스트레스도,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는 휴가를 즐기고 있다.
정선 숙암리.
삼한 시대의 갈왕이 전투에서 패한 뒤 숨어들어 고단한 몸을 바위 위에서 눕힌 채 숙면을 취한 뒤로 전쟁에서 백전백승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숙암리.
숙면이 가능하다는 곳에서 지난주 3일, 이번 주 4일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하는 일이라곤 일어나서 경치 즐기기. 밥 먹기. 요가하기, 명상하기. 인터넷 쇼핑하기, 밥 먹기, 사우나 하기 가 다인데.
그. 런. 데.
왜 나는 새로 출근할 직장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지 못하는 나를 계속 책망하고 있고.
새 직장에서의 1년, 3년, 5년 로드맵을 빨리 그려야 하는데 맘이 바쁘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나를 책망하면서 이 곳에서 쉼에 대한 스케줄 체크리스트까지 만들며 퀘스트 도장 깨듯 임무를 완수해 가지 않으면 불안한 것일까.
지금도 ‘쉬는 동안 브런치에 글쓰기’라는 체크리스트를 새 직장 출근 전까지 달성하지 못할까 봐 조급한 마음에 체크 아웃 전에 쫓기듯 이 글을 쓰고 있다.
개 버릇 남 못 주는 것일까. 그토록 열망해 오던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쉼의 시간이었건만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허용하지 못하는 걸까.
아직도 멀었다.
어떠한 순간에라도 ‘임무’로부터 가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하는 일. 새로운 임무이다. 아차! 지금도 또 나에게 임무를 만들지 않을 임무를 만들고 있구나.
아 정말 이런 바보 같은 악순환을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 정선 숙암리의 갈왕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진정한 숙면을 취할 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