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Day 100

밥으로 나누는 삶

by SUN KIM

“사망하셨습니다.”


머리가 멍해졌다. 벌겋게 충혈된 내 눈은 CPR 기계 앞에 풀어 헤쳐진 엄마의 가슴에 멈추었다.


‘우리 엄마 부끄러워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따가운 눈빛을 느꼈는지 수간호사가 엄마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세 시간 전, 엄마는 왕포도를 맛있게 먹었다. 며칠이나 의식이 없다 거짓말처럼 일어나서는 포도를 달라고 했다. 오물오물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온 식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포도 접시를 깨끗이 비운 엄마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밤을 새운 탓에 우리 식구 모두 무척 지쳐 있었다. 포도를 먹는 모습에 안심하며 잠시 눈을 붙이러 집으로 갔다. 그 두 시간 사이 엄마는 무의식의 강을 건넜고, 깐 포도는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식사메뉴가 되었다.


왕포도는 우리 집 단골 과일이다. 포도를 좋아했던 엄마는 포도씨와 껍질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단물 쓴 물까지 즐기는 포도 애호가였다. 내가 쓴 포도껍질을 쏙 빼서 버리면 영양분이 많다며 한 번 살짝 씹고 버리라는 잔소리까지 했다. 그래서 늘 세 가지 이상의 과일로 구성하는 엄마의 후식식단에 포도는 늘 중간 자리를 지켰다.


사람이 아프면 입이 짧아지는 법이다. 10년이 넘는 투병생활에 엄마는 같은 반찬을 먹는 걸 힘들어 하셨다. 오랜 투병생활로 입맛이 없었기에 우리는 매끼 다른 반찬으로 밥상을 채웠다. 한 끼 식사에 다섯에서 일곱 가지 이상의 반찬과 국 그리고 후식으로는 요구르트와 세 종류 이상의 과일을 필요로 했다.


반찬들은 모두 소화가 잘 되도록 모든 재료는 잘게 손질해야 했고, 단단하거나 질긴 재료는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었다. 늘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 걱정이셨던 도우미분을 돕기 위해 언니는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환자식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으니 고난 중 얻은 수혜였다.



엄마는 원래 입맛이 예민하기도 했다. 오히려 그 덕에 어린 시절에는 풍부한 식탁을 즐길 수 있었다. 엄마는 매일 하루 세 끼 맛깔난 반찬들로 그득그득 상을 채웠다. 반질반질한 태가 고운 잡채, 달짝지근한 불고기, 깨소금을 솔솔 뿌린 제철 나물, 노릇노릇하게 반지르르한 구운 생선 등등, 육해공군이 늘 한 상에 있었다. 상을 받을 때면 반찬 하나하나에 진득한 참기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것 마냥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엄마는 늘 그 한 끼가 마지막인 것 마냥 상을 정성스레 차려내셨다.


한끼 밥 뿐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남편의 입에 몸에 좋고 맛있는 것만 넣어주고자 늘 분주했다. 특히 아빠의 건강을 위한 엄마의 노력은 어마어마했다. 부엌 한 켠에 놓인 약탕기는 쉴 날이 없었다. 엄마는 홍삼과 양파를 함께 달여 매일 홍삼물을 만들었고,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장어를 몇날 며칠을 고은 다음 적당량을 나누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오전에는 장어국물이, 저녁에는 홍삼물이 아빠 앞에 놓여졌다. 가끔은 장어국물이 붕어국물이나 다른 보신음식으로 대체되고는 했으나 하루도 보양식이 빠진 적은 없었다.


세 명의 아이들 도시락 또한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점심시간에는 유독 내 도시락의 인기가 높았다. 점심 시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침 몇 시에 일어나야 장어덮밥에 불고기를 도시락에 싸줄 수 있을까 싶다. 급식이 나왔던 고등학교 덕에 엄마는 큰 수고를 덜었지만, 여전히 아침밥과 과일 등을 바리바리 챙겨주곤 하셨다. 귀찮아하는 내 손에 작은 도시락통을 꼭 들려주었다. 요즘엔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해본다.



엄마에겐 밥이 중요했다. 안부인사는 늘 "밥은 먹었냐"였고, 전화를 해도 밥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학교 생활에 바빠 무심했던 시절, 나는 가끔 '엄마는 밥말고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밥 이외에는 뾰족히 무언가를 물어보지도 않았기에 그 때는 그 마음을 몰랐다.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밥 먹었니'가 '보고싶다'의 동의어인 것을 알았다. "잘 지내니, 보고싶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보셨다는 것을. 내 삶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는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지만 결국 '사랑한다'는 직설적인 문장은 말하기 어려워하는 시크한 경상도 여자였던 것이다. 그 땐 왜 몰랐을까.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조근조근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말해 주었을 텐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가 보다. 가끔 보고싶다는 말 대신, 삶을 나누고자는 말 대신, 나도 "밥은 먹었니"라고 묻는다. 어쩌다 삶에 회의가 드는 날이면, 누군가가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주길 나도 모르게 기다린다.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은 삶의 일부분을 함께 하자는 말이니. "밥을 먹자"는 말은 어쩌면 어려운 말도 아니지만 쉬운 말은 더욱 아닌 것 같다.



“맛있는 냄새 난다”

“넌 꼭 그르더라?”

“뭘?”

미역국을 휘저으며 언니가 말했다.

“참기름 냄새만 나면 맛있는 냄새난다고 하잖아?”

그렇지. 나에게 참기름 냄새는 그리움의 냄새니까. 진득한 참기름을 유독 많이 뿌리던 엄마가 만들어주던 반찬들이 무의식에 남아 반응을 하는 것일테니. 주파수를 찾는 안테나마냥 참기름에만 유독 반응을 보이는 내가 우스울 때도 있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밥상에 앉아 엄마와 밥 한 끼를 함께 하고 싶다. 그 때는 먹는 내내 일상을 시시콜콜 얘기해줄텐데. 밥으로 삶을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만.



2019년 11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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