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스카이캐슬
제 3강. 오피니언에세이와 여행에세이 쓰기
칼럼은 기사와는 다르다. 기사는 시간과 장소에 제판이 있지만, 칼럼은 시간와 장소에 묶여 있지 않다.
국내외 신문과 잡지에 실리는 칼럼이나 논평 등의 글은 1000자, 즉 원고지 10매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된다.
"편집자들은 백이면 백, 연방 예산적자에 대한 장황한 분석보다 차라리 동네 마약상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뽑을 것이다...최고의 주제는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다."
-팁
1. 당신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써라.
2.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하라.
3.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아라.
4. 주제를 일찍 진술하라.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5. 요점을 명확히 해라.
6. 생생한 그림처럼 표현하라.
7. 눈에 보이게 정리하라. 문장과 문단은 짧게 써라.
8. 마무리를 잘하라. 요점을 요약하고,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연습문제 2: 15분에 걸쳐 강력한 흡인력이 있는 이야기로 두 번째 원고를 작성한다. 잠시 시간을 내어 당신이 작성한 칼럼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제목을 붙이자.
"넌 누구와 결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는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핫한 스카이캐슬의 이야기다. 학부모들은 입시컨설팅에 관심을 보이고, 싱글들은 캐릭터에 관심을 보인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수임역에 대한 논쟁이다.
"뭐 누구랑 안할지는 확실해~."
"그게 누군데?"
"이수임"
"오! 나도!"
드라마에서 가장 상식적으로 그려지는 이수임이 결혼대상 회피 1호다. 이유는 '애매한 포지션'과 '지나친 오지랖'이다.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욕망에 솔직한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노선이 확실하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이수임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수임은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학부모다. 동화작가인만큼 자신만의 교육관이 확실하다. 자신의 올바른 교육관을 남에게 관철시키려고도 한다.
아마도 이 부분이 문제인 것 같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관철시키는 방식도 '옳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자신의 가치 기준을 주장하고자 남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당당히 한서진에게 충고를 하기도 한다. 이수임의 욕망은 무엇일까.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이수임의 욕망은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이수임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한서진이다. 스카이캐슬에서는 가장 목적지향적이고 욕망에 솔직한 캐릭터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신분으로 세탁을 할 만큼 윤택한 삶에 대해 목마르다. 그리고 어렵게 이룬 자신의 신분을 자식을 통해 유지하고자 고군분투한다.
한서진은 이수임과 달리 원하는 것이 확실하다. 사회의 정의도 아니며, 좋은 교육 제도도 아니다. 정확히 팔이 안으로 굽는 캐릭터다. 소위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오직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지만, 그 성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 말이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학부모다.
이수임과 한서진의 중간 단계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바로 한세아다. 지성에서 인성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면서 순응적이던 캐릭터에서 남편에게 맞서는 캐릭터로 변신 중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한세아의 변화가 아이들에게 일으키는 변화다. 작가는 분명 '부모가 변해야 아이들이 변한다'라는 진리를 알려주고자 함이다. 한세아는 사회 정의는 바라지 않지만, 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중에서 '행복'이라는 기준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에서 볼 때는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앞의 세 캐릭터 모두 자식을 '사랑'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러나 가장 '사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는 진진희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힘들 때 안아주고, 침대 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화를 내지만 결국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
진진희는 성공이라는 욕망은 있지만 그것보다는 아이의 안위가 먼저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가장 현실순응적이면서 소박하고 따뜻한 캐릭터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가장 평범한 부모의 모습이다.
이 모든 캐릭터의 욕망은 각기 다르다. 욕망에 대한 솔직성도 다르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는 것에 더 분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한서진이 안쓰럽기도 한 이유다. 오히려 그 욕망이 이해가 되는 면들이 많은 것이다. 가장 본능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이수임의 욕망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사회 정의일지. 현 교육 세태에 대한 비판일지.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인지 말이다. 이수임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는 어쩌면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확실히 무언가를 정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평가일 수 있다. 어쩌면 집단에 맞지 않는 룰을 적용하려는 이들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욕망의 스카이캐슬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제목: 욕망의 스카이캐슬
2019년 01월 22일 월요일 서울
오늘은 여기까지,
휴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