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Day-66

죽음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말라

by SUN KIM

오늘은 4월 16일이다. 국민 모두가 슬픔에 빠지는 날이다. 혹자는 아직까지 슬퍼해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자는 아직까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개탄해한다. 오늘 난 어느 편에 선다기보다 단지 가족을 잃는 슬픔을 말하고 싶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10년 정도 아프셨다. 지금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그 당시는 불치병에 속했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산소통을 24시간 끼고 사는 방법뿐이었다. 치료법이 개발되었을 때는 엄마의 몸 상태가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건 돌아가시기 8년 전이었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었다. 연도로 따지자면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엄마의 죽음을 8년 동안 예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8년 동안 살얼음을 걷는 엄마의 상태를 지켜봐야 했고, 매 순간 산소 수치를 확인해야 했다. 집안 누구도 감기가 걸려서는 안 되었고, 집은 무조건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했다. 당장 엄마가 다음 날 돌아가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하루하루가 죽어가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8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8년을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죽음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돌아가시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을 이제 평생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포함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당장 나타나는 슬픔과는 별개로 내 인생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당장 볼 수 없다는 슬픔은 애도 기간 동안 자각을 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잦아든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나는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만 한다.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단지 비어있을 뿐이다. 결국 마음 한 구석이 늘 비어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인지라 한 동안은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보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방황도 하고 안 하던 행동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려고 애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깨닫는 것은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천천히 빈자리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내일 당장 소중한 사람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삶의 기준조차 변하기 시작한다.

우습게도 내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돌아가신 날이 아니다. 엄마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연례행사였던 엄마의 생일이 평범한 날 중의 하나가 된 것이 매년 가장 슬프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세월호를 그린 영화의 제목이 '생일'이라는 걸 듣는 순간, 공감이 되었다. 그들도 생일이 가장 슬픈 날일 수 있다. 더 이상 축하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더 이상 함께 웃을 수 없는 현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도 슬픔을 함께 한 날들보다 기쁨을 함께 한 날들이 더 그리운 것 같다.

8년을 예상해도 그 슬픔이 덜해지지 않는데,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그것도 사고로 잃은 사람들은 그 충격과 분노가 훨씬 더 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도 대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주위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싫었던 말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와 "이제 그만 잊어야지"였다. 그 말들은 어떤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잊히지도, 살아야겠다고 힘이 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더 고마웠고 위로가 되었었다.

세월호가 국가적인 재난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 슬픔에 공감을 못할 바엔 아무 말도 안 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구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대신해줄 수도 아픔을 보상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음이 한 켠이 욱신거린다. 실시간 트위터로 상황을 지켜보던 나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같이 상관없는 타인도 그런 한데 그 가족들은 어떠하겠는가.. 난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 가족들이 마음의 평온을 가지도록 비는 것조차 주제넘은 일 같다. 단지 앞으로 더 그리워질 남은 나날을 잘 견뎌내 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세월호에 잠든 모든 이를 추모하며.

2019년 4월 16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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