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말라
오늘은 4월 16일이다. 국민 모두가 슬픔에 빠지는 날이다. 혹자는 아직까지 슬퍼해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자는 아직까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개탄해한다. 오늘 난 어느 편에 선다기보다 단지 가족을 잃는 슬픔을 말하고 싶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10년 정도 아프셨다. 지금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그 당시는 불치병에 속했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산소통을 24시간 끼고 사는 방법뿐이었다. 치료법이 개발되었을 때는 엄마의 몸 상태가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건 돌아가시기 8년 전이었고,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었다. 연도로 따지자면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엄마의 죽음을 8년 동안 예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8년 동안 살얼음을 걷는 엄마의 상태를 지켜봐야 했고, 매 순간 산소 수치를 확인해야 했다. 집안 누구도 감기가 걸려서는 안 되었고, 집은 무조건 적정온도를 유지해야 했다. 당장 엄마가 다음 날 돌아가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하루하루가 죽어가는 과정이었고, 동시에 살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8년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8년을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죽음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돌아가시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리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을 이제 평생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포함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당장 나타나는 슬픔과는 별개로 내 인생 전반을 바꾸어 놓았다.
당장 볼 수 없다는 슬픔은 애도 기간 동안 자각을 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잦아든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나는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만 한다. 그 빈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단지 비어있을 뿐이다. 결국 마음 한 구석이 늘 비어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인지라 한 동안은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보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한다. 방황도 하고 안 하던 행동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려고 애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깨닫는 것은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천천히 빈자리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내일 당장 소중한 사람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삶의 기준조차 변하기 시작한다.
우습게도 내가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돌아가신 날이 아니다. 엄마의 생일이다.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연례행사였던 엄마의 생일이 평범한 날 중의 하나가 된 것이 매년 가장 슬프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세월호를 그린 영화의 제목이 '생일'이라는 걸 듣는 순간, 공감이 되었다. 그들도 생일이 가장 슬픈 날일 수 있다. 더 이상 축하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더 이상 함께 웃을 수 없는 현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도 슬픔을 함께 한 날들보다 기쁨을 함께 한 날들이 더 그리운 것 같다.
8년을 예상해도 그 슬픔이 덜해지지 않는데,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그것도 사고로 잃은 사람들은 그 충격과 분노가 훨씬 더 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도 대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주위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싫었던 말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와 "이제 그만 잊어야지"였다. 그 말들은 어떤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듣는다고 잊히지도, 살아야겠다고 힘이 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묵묵히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 더 고마웠고 위로가 되었었다.
세월호가 국가적인 재난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 슬픔에 공감을 못할 바엔 아무 말도 안 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구도 가족을 잃은 슬픔을 대신해줄 수도 아픔을 보상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음이 한 켠이 욱신거린다. 실시간 트위터로 상황을 지켜보던 나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같이 상관없는 타인도 그런 한데 그 가족들은 어떠하겠는가.. 난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 가족들이 마음의 평온을 가지도록 비는 것조차 주제넘은 일 같다. 단지 앞으로 더 그리워질 남은 나날을 잘 견뎌내 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세월호에 잠든 모든 이를 추모하며.
2019년 4월 16일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