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액의 가창과 어느 봄의 전쟁

by 선비천사

지천으로 터지는 붉은 수액의 집단 가창이다

겨우내 닫힌 땅꺼풀을 짓이기며

초록의 보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올린다

갯골 바람에 실려 온 아이들의 까르르한 웃음소리가

꽃멀미 난 상춘객의 무심한 발길 아래 자지러진다


지구의 뒷면, 평행한 위도 너머엔

꽃잎의 속살을 닮은 청춘이 항복도 없이 꺾인다

핏줄 대신 붉은 침묵이 땅의 식도를 적시고

삶의 가장 고결한 절정에서

아이들은 꽃 지는 속도로 제 그림자를 지운다


봄은 밀고 올라오는 투쟁의 몸짓이고

전쟁은 속수무책 번져가는 잔인한 계절이다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와 어느 어린 병사의 마지막 숨표가

시흥의 갯들 위로 어지럽게 뒤섞인,


아, 이 눈부신 대지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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