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한 달의 공백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하지만 선호에게 그 한 달은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1월의 매서운 추위가 조금씩 풀리고, 2월의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아직 잎은 없었지만, 가지 끝이 전보다 덜 앙상해 보였다.
어딘가 봄이 가까워지는 느낌.
햇빛도 조금은 길어졌다.
해가 지는 시간이 아주 조금 늦어졌다.
사람들은 그걸 계절의 변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호에게 계절은 의미 없었다.
봄이 와도, 겨울이 가도.
그에게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없는 도서관.
캔커피가 없는 책상.
모든 게 예전 같았다.
아니, 예전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같은 자리. 같은 책상. 같은 형광등 불빛.
하지만 그 안의 공기가 달랐다.
훨씬 더 텅 비어 있었다.
'원래 이랬잖아.'
선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를 보기 전에도 이 도서관에 왔다.
캔커피 없이도 공부했다.
혼자서도 버텼다.
아무것도 특별한 건 없었다.
그게 원래 자신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왜.
한 번 따뜻함을 알아버리면
차가움이 더 힘든 걸까.
왜 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이렇게 공허하게 느껴질까.
선호는 잠시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역시 글자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형광등 불빛이 책 위에 희게 내려앉았다.
그것뿐이었다.
* * *
선호는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아침이 되면 도서관으로 왔다.
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개가 들렸다.
문 쪽을 봤다.
이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됐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습관이 됐다.
기대는 사라졌지만, 습관은 남았다.
'혹시나.'
선호는 스스로도 웃겼다.
'혹시나 오늘은.'
오늘은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오늘은 다시 저 자리에 앉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캔커피를 올려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혹시 나가 매일 배신당했다.
문은 여러 번 열렸다.
학생들이 들어왔다.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들어왔다.
가끔은 낯선 얼굴들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한 번도 아니었다.
선호는 결국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형광펜을 들었다.
* * *
어느 날.
선호는 그녀가 앉던 자리 앞을 지나갔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냥 지나가려다 멈췄다.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그리고 멈췄다.
빈 책상.
빈 의자.
누군가 앉아 있던 흔적은 없었다.
책도 없고, 가방도 없고,
컵도 없고, 메모지도 없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하지.
한 달이나 지났으니까.
사람 하나의 흔적은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사라진다.
선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천천히 책상 표면을 만졌다.
차가웠다.
나무 표면이 딱딱하게 느껴졌다.
여기 앉아 있었는데.
여기서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여기서 가끔 이쪽을 봤는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기억들이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선호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책상 감촉이 전해졌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거뒀다.
미련하다.
빈 책상을 만지고 있다니.
자기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선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10화 이어서 보기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전자책]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