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 묻고 싶다.
그림 속 하나씩 먼저 설명하자면 새장을 들고 있고 새에게 모이를 주는 손은 동일인의 손이다.
그리고 새장에 갇힌 새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다.
고양이는 새 장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하늘에는 빛이 통과하는 부서진 새장이 떠다니고 그 안에 새는 없다.
....
이제 그림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새장 속에 있는 새는 육신에 갇힌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그래서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한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장으로 표현했고 거기다가 새 장을 잡고 있는 손이 우리의 한계인 육체를 잡고 있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죄성이다. 내면의 죄성과 바깥에서 모이로 유혹하는 손의 죄성과 같기에 동일 인물이라는 표현을 했다.
새장에서 벗어나 새가 하늘에서 날아야 진정한 새듯이, 또 그 넓디넓은 하늘에서 자유롭게 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다.
하지만 새 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두려움이 있다.
유혹은 새장 안에만 있겠다면 먹거리 걱정을 할 것 없다고 나를 꾄다. 얌전히 새장 안에서 먹을 것 걱정, 지낼 곳 걱정 없이 안락하게 지내라고 나를 유혹한다. 새장 밖은 자유하다는 진실을 감추려고 새장 밖은 먹이를 구하는 고생과 안락하게 쉴 곳이 없다고 거짓으로 감추면서.
두려움은 새 장 밖을 나가기만 하면 사나운 고양이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잡아먹을 것이라 협박한다. 그래서 새는 그 두려움에 새장이 열려있지만 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를 유혹과 두려움으로 새장 안에 가둬두고 있다.
우리가 새라면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만이 새의 천성대로 사는 것이기에 그것을 이상으로 생각해 하염없이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을 꿈꾸며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새장 안에 갇힌 것을 잊은 채, 더 고급스럽고 맛있는 먹이를 꿈꾸고 더 멋스럽고 넓은 새장을 원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꿈으로 삼다 그것만을 쫓고 누리며 산다. 맛있는 먹이와 고급스러운 새장이 행복의 전부인 줄 알고 그렇게 살다가 새장 안에서 죽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다.
다행히 나는 사실을 안다고는 하지만 과연 언제 고양이가 물어뜯으려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아름다운 새장과 걱정 없는 모이의 유혹을 뿌리치고라도, 새장을 탈출 해 훨훨 날아볼까? 물리적 한계와 나를 잡고 있는 모든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롭게 훨훨 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매일 두려움과 싸워보고 유혹을 거절하는 방법으로 내성을 기르다 보면 저 문을 뚫고 나올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오로지 하나이니 아무리 흔들려도 그 기준만은 잃지 말 것을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