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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Jan 13. 2022

23.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아이들이 감기가 걸리면 나는 주로 “네가 손을 잘 안 씻고 입에 자꾸 물건을 넣으니 세균이 들어와 아픈 게 아니겠냐?”, 남편이 아프다고 해도 “당신이 담배를 많이 피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 아니냐?”하며 오히려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손도 자주 씻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운동도 하는 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코로나까지 걸리자 내가 가족들한테 핀잔을 주었던 게 억지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감기에 걸리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력이 약해져 있거나 몸속과 환경에서 일어나는 결과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이 원인일 수가 있다.

어쨌든 아프고 나면 무엇이 좋은가? 생각해봤더니 면역력이 생겨서 내 몸이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 관한 일방적인 상식으로 하는 말이다.

그때 문득 우리가 살면서 고난을 받는 것으로 “네가 죄를 저질러서 그렇다”, “나쁜 마음을 먹어서 그렇다.” 그렇게 남을 정죄하곤 하는데 그것은 앞서 내가 내 가족들에게 핀잔을 준 것 같은 억지이다. 감기를 겪고 나면 면역력이 올라가고 수차례의 감기를 겪으며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쉬라는 신호로 받고 몸을 돌본다.


인생을 살아가며 나이와 환경에 따라 크고 작은 고난을 겪고 그 고난으로 우리는 면역력이 생겨 단단해진다. 우리 마음의 면역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고난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첫 번째 주님이 주시는 고난의 성격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손 쓰지 못하는, 우연과 사고처럼 닥치는 것이 많다. 그런 종류의 고난은 우리를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준다. 변화를 겪게 한다. 아브라함에게 살던 곳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살던 곳은 꼭 물리적인 장소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자기가 익숙해있던 곳에서의 변화이다. 그래서 그런 류의 고난은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사실상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그 결과에 따른 고난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고 독단적으로 생각해 올바르지 못한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주님께 묻고 답을 구해 선택한 결과는 앞선 고난의 종류와 비슷하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결정한 선택은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을 경향이 크기에 잘못된 선택일 확률이 크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첫 번째 고난의 예를 들어보면, 나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를 학대하고 관심 없는 부모를 만났다. 내 영역 밖의 문제를 만난 것이다. 나는 그 아픔으로 오랫동안 힘들고 아팠지만 20살에 부모로부터 독립해 많은 일을 하며 결국 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나를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었기에 나는 그 시간에 대해 감사하고 내 인생은 그때와 180도로 완전히 변해있다.

두 번째 고난의 예는 창세기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90이 넘은 두 부부에게 아이를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둘은 믿지 못해 웃었다. 그리고 사라는 여종을 아브라함에 들어가게 해 아들을 낳게 한다. 그 후, 그 여시종과 불화를 겪고 결국 아브라함은 귀한 아들과 여종을 쫓아 보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그 가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여종과 아들은 희생을 당했다. 그리고 사라도 질투와 자식이 없는 서러움을 겪었다. 아브라함도 두 여자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들이 결정한 선택으로 고난을 겪었다. 독단적인 선택으로 고난을 겪는 이야기는 성경책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고난 속에서 우리가 아프게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은 모든 고난을 선으로 합력하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고난은 유익한 것이다. 나의 면역력을 길러 나를 강하게 하고 나에게 절실한 변화를 주기 위함이다. 또, 고난을 통해 배우는 게 있고 같은 처지의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고 고난으로 자아가 깨져야 그 틈으로 은혜의 빛이 들어올 수 있다. 고난을 통해서만이 내 십자가에 나를 못 박고 중여야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다.


고난에 대해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난을 유익으로, 축복으로 여기며 감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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