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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Jan 24. 2022

27. 시련의 이유


태어난 지 6개월부터 세계 여행을 시작한 우리 아이들은 이제  5. 물과 함께 하는 것이  친숙하다. 하지만 수영을 정식으로 배워  적이 없어서인지 자기들이   있는 곳에서만 수영하고 조금이라도 깊으면 아예 겁을 먹고 시도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멕시코 여행에서는 나는 마음먹고 아들과 딸을 4FT 되는 물로 데려가 벽에서 손을 떼고 나에게 수영해서 오게 했다. 손만 떼고 오면 당장  손이 닿는 거리였다. 아들은 금방 벽에서 손을 떼고 나를 믿고 몸을 던졌다. 그래서 거리를 조금씩 늘리니 자신감을 갖고 얕을 물에서 하듯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딸이었다.

엄마를 믿고, 너를 절대로 물에 빠지게  일이 없으니 몸을 던져 보라고 했다. 하나님과 엄마가 너를 물에 빠지지 않게 하겠다고 설득했지만 두려움에 이미 잠식된 딸은 시도조차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웬만하면 아이의 두려움을 이해해 안아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무엇보다 아이가 공포에 휩싸여 울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안아준다면 앞으로 모든 도전에서 이런 자세를 취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아이는 요즘 제법 수영을 잘했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내게  거리에서 두려움에 잠식당해 울기만  , 시도조차도 못하는  안타까워 이번에는 엄하게 굴었다.

“소리 지르고 울지 마라.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종일 있더라도 네가 시도해서 엄마의 손을 잡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서 나는   없어. 무서워라는 생각이 너를 지배하고 그것이 너를 사로잡아 가장 믿어도  엄마와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다. 엄마는  앞에 손만 내밀면 닿을 곳에 있고 절대로 너를 물에 빠뜨릴 일이 없다. 네가 벽을 잡은 손을 떼고 엄마에게로 오면 엄마는 너는 1초도 안돼 붙잡아 올려주겠다설득하고 구슬리고 무섭게도 굴었지만 거의 30분을 아이는 꼼짝도 못 했고 나도 지쳤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겨우 나에게 딸에게 나는 오버 리액션을 하며 칭찬했다. 그리고  한 번  시도했다. 여전히 겁을 먹고 시간이 걸렸지만 첫 번째 보다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다음 ,  시도했다. 똑같이 겁을 먹었지만 믿음이 있었기에 아이는 몸을 던져 나에게 왔고 마지막으로 한번  시도했을 때는, 칭찬을 받는 기쁨에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먼저  하고  하자고 졸라대며 공포를 극복해 나갔다.


물론 우리를 지켜본 사람이 혹시 있었다면 아동학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무서워하는데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즐기고 있는 아들을 옆에 있게 함으로써 딸이 질투심도 자극했고 공포가 너를 사로잡고 있으니  공포에 집중하면 절대로 네가 문제에 닥쳤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무섭게 타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공포 때문에 너는 엄마와 하나님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꼭 딸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공포에 사로잡히면 자신이 몸을 완전히 맡겨도 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고불고 꼼짝달싹 하지 못한다.

손만 내밀면 닿을  있는 곳도 절대로 시도하지 못한다. 그저 공포에 사로잡혀  자리에서 주저앉아 시간을 낭비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결국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려워져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한다. 그래서 공포가 닥칠 때는 그것에 잠식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몸을 재빨리 던져 버려야 한다.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손을 잡아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믿기에  강도가  도전에도 하나님께  나아갈  있다. 이것으로부터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상, 그가   닿는 곳에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인생의 물속에서 수영할  있을 것이다. 렇게 수영하는 법을 익히게 되면 마침내 물을 즐길  있게  것이다. 주님이 내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내가 딸에게 공포를 극복하고 물에서 즐기기를 바랐기에 끝까지 아이에게 엄마를 믿고 몸을 던지게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멕시코에서 돌아오는 , 딸은 이제 나에게 몸을 던져 수영을    있다고 자신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수영 연습을    없음을 안타깝게 겼다. 그리고 나는 그런 딸을 보며 딸을 가르치던  순간 아이의 눈물에 마음이 아프고 아이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강하게 아이를 푸시했던 것이 결국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마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얕은 물에서는  거리도 호흡을 참고 수영을 잘하게 되었잖아. 배영도 연습하게 되었잖아. 그렇다면 똑같은 원리야. 단지  발이 닿지 않아 네가 빠질까 봐 두려운 거겠지만 여기서도  수영할  있어. 네가   있는  믿기에 엄마가 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네가 공포만 이겨내면 이곳에서도 수영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너는 이곳에서 한참 동안 수영 연습하게 되겠지. 그러다가 깊은 물에서는 어떻게 너를 지키는지 발견하게  것이고 물에 빠질 위험은 게 되겠지. 오히려 너는 물을 즐기겠지. 엄마는 물에 빠질 위험에서 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고 물속에서 즐길  있도록 너를 돕고 싶은 거야. 네가 물을 즐기게 되기까지 엄마는 네게 절대로 시선을 떼지 않을 거야. 너를 지켜줄 거야. 그러니 네가 물에 빠질 염려는 하지 말아. 내가 그렇게 두지 않으니 엄마를 믿고 연습하렴.”


내게 시련이 닥칠 때, 주님께서도 이렇게 나를 지켜보면서 속으로 생각하고 계시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이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완전히 즐기도록 해주고 싶으시기에 내 무릎, 허벅지, 가슴, 머리 위의 물속에서 계속 지켜보시며 수영 연습을 시키시고 그곳에서 그다음 단계를 위해 내게 시련을 주시며 나처럼 생각하시겠지. 그리고 이 위험한 세상 속에서 완전히 주님을 믿고 나를 지키며 즐기며 살기를 바라시겠지.

딸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나는 하나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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